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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방향

40대 창작자와 브랜더가 살아남기 위한 10가지 조건 下

 

이 글은 下편입니다. 上편부터 읽어주세요.

 

40대 창작자와 브랜더가 살아남기 위한 10가지 조건 下

 

 

 


 

6. 좋아하는 것·잘하는 것·시장성이 만나는 일치감

 

20대에 진로를 고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고, 나 역시 가장 많이 생각했던 질문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할 것인가.

 

나는 음악을 전공했다. 음악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늘 음악을 들었고, 음악적인 생각을 했으며, 연습실에서 보내는 시간도 꽤 길었다. 하지만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음악을 좋아했지만, 음악으로 물질적인 성공에 닿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 음악에 매달렸다. 음악 이외의 일을 해볼 생각조차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악을 그만두면서 느낀 상실감은 꽤 크게 다가왔다.

 

그 뒤 카메라를 들고 떠난 여행기에서 한 사진작가의 프롤로그가 시작된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직업과 진로를 생각할 때에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당신은 실제로 무엇을 잘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돈이 되는가.

 

이 세 가지가 한 사람의 삶 안에서 일치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사람 가운데 이 세 가지가 모두 일치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흔히 직업과 이상의 괴리라고 말한다.

 

대부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다른 일을 하며 돈을 번다. 그리고 돈을 버느라 정신없이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원래 무엇을 좋아했는지 잊고 만다.

 

어떤 사람은 20대에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다. 일단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따라간다.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가다 보면 앞으로도 계속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 채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부터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적당히 살아간다. 무언가를 깊게 좋아하고, 오래 탐구하고, 그것을 자기 취향으로 발전시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 내가 아는 창작자와 브랜더 가운데에는 자신만의 취향을 일로 발전시킨 사람들이 꽤 있다. 꼭 예술가나 음악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내가 아는 음악인 중에는 자신이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저 밥벌이이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계이고 직업이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피아노 연주를 하는 사람도, 정작 자신에게는 그것이 직장에서 수행하는 일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예술가라고 해서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부산에 내가 아는 한 커피 로스터가 있다.

 

부산에서는 이미 꽤 유명한 로스팅 장인이고, 세계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로스터와 바리스타가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커피에 진심이다.

 

때로는 잠까지 줄이고 밤을 새워가며 로스팅을 한다. 커피를 바라보는 태도와 직업적인 섬세함은 귀감이 될 정도다. 얼핏 보면 커피에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 진심이 그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의 커피에는 잔잔하고 가벼운 향미가 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맛의 인상은 선명하다. 매장의 인테리어와 바리스타들의 복장, 커피를 진열하는 방식과 잔의 재질까지 하나의 브랜딩 안에서 일치감을 보인다.

 

커피의 맛과 그가 가진 철학, 공간과 사람, 서비스와 시각적인 인상이 한 방향을 바라본다.

 

그래서인지 문을 연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그곳은 이미 부산에서 커피의 성지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커피 브랜드에 걸었다.

 

그가 좋아하는 커피, 그가 누구보다 잘하는 커피, 그리고 충분한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커피 시장이 한곳에서 만난다. 이 세 가지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그런 로스터가 이토록 험난한 카페 시장에서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러분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자신의 생존과 미래를 걸고 오랫동안 전개해볼 만한 것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잘할 수 있는가.

 

지금 당장은 뛰어난 실력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잘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내려놓고 깊게 몰입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그것을 충분히 잘하게 되었을 때 실제로 돈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

 

시장성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내가 만들어낸 가치가 누군가에게 실제로 필요하고, 그 필요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형태로 전달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뛰어난 창작물이라도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없거나, 원하는 사람에게 도달하지 못하거나, 구매할 수 있는 형태로 설계되지 않았다면 시장에서는 돈으로 바뀌지 않는다.

 

좋은 것을 만드는 능력과, 그 좋은 것의 가치를 시장이 이해하게 만드는 능력은 서로 다른 기술이다.

이 세 가지를 계속 연결해 생각해야 한다.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무엇이 시장에서 가치로 교환될 수 있는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40대가 되었다면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무한하지 않다. 이 글을 읽는 분이 30대라면 아직 충분한 기회가 남아 있다. 다만 적어도 30대 안에는 이 세 가지가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지 본격적으로 탐색하고 실험해야 한다.

 

평범한 회사원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회사를 떠난 뒤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핵개인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부터 이 세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나는 현재 이 세 가지가 놀라울 만큼 한 방향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상태에 있다.

 

20대에는 방황했고, 30대에는 명확한 디렉션이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좋아하는 감각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사람이었다. 취향이 정말 많았다.

 

여행, 음악, 음식, 영화, 드라마, 독서, 사진, 오토바이. 그 밖에도 수많은 분야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예전에는 이런 취미들이 돈도 되지 않고 내 삶을 발전시키지도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브랜딩을 만드는 재료였다.

 

브랜딩은 무언가를 깊게 덕질해본 사람이 잘할 수밖에 없다.

 

어떤 대상을 오랫동안 좋아해본 사람은 사소한 차이를 알아본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흉내인지 구분한다. 사람들이 어떤 지점에서 설레고, 어떤 디테일에 돈을 지불하며, 무엇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는지 감각적으로 이해한다.

 

나는 그 많은 취향 가운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개발했다.

 

그것이 사진이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진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사진 실력은 멈추지 않고 늘고 있다. 하나씩 퀘스트를 깨나가듯 새로운 결과물들이 내 앞에 등장한다.

 

이미지를 창조하는 일에서 희열을 느낀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이 내 생각과 기술을 통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사진은 실제로 나에게 물질적인 결과를 가져다준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돈이 되는 일이 세 개의 톱니바퀴처럼 연동하여 돌아간다. 하나가 움직이면 다른 하나가 함께 움직인다.

 

사진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 깊게 연구한다.

연구하기 때문에 실력이 늘어난다.

실력이 늘어나기 때문에 더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다.

좋은 상품은 시장의 반응과 수익을 만든다.

그 수익은 다시 새로운 사진을 창작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내가 사용하는 시간과 노력이 흩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하나의 방향으로 축적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직업을 정말 오랫동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작가가 된 지 이제 11년이 되었다. 앞으로 53년을 더 할 예정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인 만큼 자신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사진가로 살아가는 동안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무언가가 꼬일 때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하나의 일이 실패했다고 해서 사진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의 방법이 맞지 않다면 다음 방법을 찾으면 된다.

 

흔히 이런 일을 천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천직은 어느 날 운명처럼 발견되는 직업만을 뜻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오랜 훈련을 통해 잘하는 것으로 만들고, 그 가치를 시장이 원하는 형태로 연결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세 가지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겹치기는 어렵다.

 

자신은 아트워크 이미지를 만들고 싶지만, 당장의 생계는 돌사진이나 웨딩사진을 통해 유지해야 할 수도 있다. 자신이 창작하고 싶은 분야와 돈이 되는 분야가 어느 정도 겹치면서도, 완전히 같지는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선 돈을 위한 일을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사이드에서 계속 개발해야 한다.

 

생계를 위한 일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것만 하느라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완전히 잊어서는 안 된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개발하다 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통찰이 생긴다. 그것이 누구에게 필요할지, 어떤 형태로 상품화할 수 있을지, 기존 시장의 무엇과 연결할 수 있을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완벽하게 겹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교집합이 있다면 가능성은 있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발전시켜 잘하는 것으로 만들고, 그 업계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돈으로 바뀌는 기회와 만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이 괜찮더라도 이 세 가지는 꽤 깊게 생각해볼 문제다.

 

직업도 시장도 변한다. 잘되던 일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고, 지금은 없던 시장이 새롭게 열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이 한 방향으로 맞물려 있다면 변화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 일치감은 단순한 직업 만족이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다.

 

 

 

 

 

 


 

 

7. 나를 기억하게 만드는 자기만의 언어

 

“사진만 잘 찍으면 다들 알아봐주겠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지.”

 

사진가들이 곧잘 하는 착각이다. 물론 예전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카메라를 들고 무언가를 찍는다. 결과물이 꽤 흡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것은 나만의 시선이고,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창작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을 돈으로 바꾸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그 사이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가 있다.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친구들은 결과물을 보고 감탄한다.

 

“야, 너 돈 받고 찍어도 되겠다.”

 

취미 사진가는 친구에게 말한다.

 

“그럼 돈 낼래? 입금해.”

 

친구는 답이 없다.

 

사진을 잘 찍었다는 감탄과, 실제로 돈을 지불하는 구매는 전혀 다른 행동이다.

 

무언가를 돈 받고 판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만든다. 결과물의 품질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이 왜 필요한지, 다른 결과물과 무엇이 다른지, 구매자의 삶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결과물과 구매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창작자의 언어다.

 

그 언어가 일관되게 쌓이면 하나의 세계관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언어는 감성적인 문장 몇 줄이나, 어디선가 본 듯한 카피라이팅이 아니다. 창작자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좋아하고 탐구하며 얻은 생각, 그 사람만의 말투와 관점이 반복해서 쌓인 언어다.

 

나에게도 반복해서 사용하는 문장들이 있다.

 

저희는 모션만 찍습니다.

기록이 아니라 설계사진을 추구합니다.

아이모션의 세계관과 아이의 세계관이 만납니다.

사진은 과거와 현재만을 담지 않습니다. 미래를 미리 불러올 수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는 좋은 사진의 모음이 아니라, 선택해야 할 이유의 모음입니다.

사진가라는 직함을 버리고 브랜딩 디렉터가 되어야 합니다.

빛과 디렉션.

브랜딩은 덕질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문장들은 내가 억지로 꾸며낸 말이 아니다.

 

작업을 반복하면서 알게 된 것, 고객을 만나며 느낀 것, 사진을 상품과 콘텐츠로 발전시키면서 얻은 통찰이 언어가 되어 나온 것이다.

 

나는 어떤 세계를 만들기 위해 먼저 멋진 문장을 지어낸 것이 아니다. 내가 오랫동안 해온 작업 안에 이미 하나의 관점과 세계가 존재했고, 나중에 거기에 언어로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세계관은 말로 먼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반복된 작업과 선택 속에 이미 존재하는 관점을 발견하고, 거기에 자기 언어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자기 언어와 실제 작업이 일치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정말 하나의 세계관이 된다.

 

둘 중 하나만 성장해서는 안 된다.

 

자기 언어를 표현하지 못해 좋은 작업의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말은 훌륭하게 하지만 실제 결과물의 형태가 불분명하고, 작업의 대비감과 개성이 흐릿한 사람도 있다.

 

언어와 작업은 함께 성장해야 한다.

 

말은 결과물을 설명해야 하고, 결과물은 그 말을 증명해야 한다.

 

사진은 어느 정도 촬영하지만 유행할 법한 표현만 반복하는 사람들도 많다. ‘감성적인’, ‘자연스러운’, ‘특별한’, ‘고급스러운’ 같은 단어는 어느 사진가의 소개문에 붙여도 대체로 어색하지 않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어디에나 붙일 수 있는 말은 누구도 특별하게 만들지 못한다.

 

자기 언어가 평균적이면, 아무리 사진이 괜찮더라도 시장에서는 전체 작업이 평균처럼 느껴질 수 있다. 고객은 그 작가만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가격과 컷 수, 서비스같은 조건만 비교하게 된다.

 

생성형 AI가 일상에 들어온 지금은 이 문제가 더 커졌다.

 

언어를 만드는 일이 어렵다고 해서 모든 문장을 AI에게 통째로 맡기는 사람들이 많다.

 

“AI에게 써달라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자기 관점과 언어가 없는 사람이 AI에게 문장을 맡기면, 대체로 매끄럽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평균적인 카피가 나온다. AI가 나빠서가 아니다. 사용자가 어떤 생각과 말투, 기준을 가진 사람인지 충분히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가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면, AI는 카메라의 노출계와도 비슷하다.

 

카메라의 노출계는 장면 안의 명과 암을 분석하고 평균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사진가가 어떤 장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까지 대신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사진가는 노출계를 참고하지만, 최종 노출은 직접 판단한다. 밝게 표현할지, 어둡게 표현할지, 하이라이트를 날릴지, 암부를 잠기게 할지는 사진가의 의도에 달려 있다.

 

AI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방향을 주지 않으면 방대한 데이터 안에서 가장 무난하고 안전한 언어를 꺼내놓는다. 누구에게도 크게 거슬리지 않지만, 읽고 나면 기억에도 잘 남지 않는 문장이다.

 

AI의 문장을 참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최종 언어는 창작자가 책임져야 한다.

 

자기 경험과 관점, 말투와 취향을 가진 사람이 AI를 사용하면 생각을 더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다. 반대로 자기 언어가 없는 사람이 AI의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면, 그 사람의 브랜드가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평균적인 문체만 남는다.

 

요즘 광고와 브랜드 소개문을 읽다 보면 그런 느낌을 자주 받는다. 문장은 매끄럽지만 어디서 본 듯하고, 뻔한 어휘들이 반복된다. 틀린 말은 없지만, 그 브랜드를 기억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 문장만으로 누가 당신의 작업을 돈을 주고 사고 싶어질까.

 

앞에서 이야기한 취미 사진가가 실제로 꽤 괜찮은 사진을 찍는다고 가정해보자.

 

우연히 한 번 잘 찍은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같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자기만의 촬영 방식과 서사, 개념과 철학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쇼윈도와 같은 인스타그램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사진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단어와 문장을 고르고, 여러 콘텐츠를 통해 같은 관점을 반복해서 전달한다.

 

그렇게 작업과 언어가 함께 쌓이면 사람들은 사진 몇 장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가 만드는 하나의 세계를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진이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때부터 취미 사진은 상품이 되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작가가 된다.

 

사진만 잘 찍으면 된다는 시절은 이제 없다.

 

생성형 AI는 이미지와 문장의 평균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구매력을 가진 사람들의 감각도 함께 진화했다. 정보는 끝없이 쏟아지고, 수없이 많은 브랜드와 발에 채일 만큼 많은 사진작가 가운데 필요한 사람을 골라 선택하는 시대다.

 

그 속에서 결과물만 보여주는 사람은 쉽게 지나쳐진다.

 

40대가 되면 시간이 부족한 이유가 하나 더 생긴다.

 

창작자라면 자기 언어를 만들기 위해 책을 읽는 시간도 반드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언어를 오래 읽고, 다른 사람의 세계를 통과하고, 자기 경험을 계속 문장으로 꺼내보아야 한다.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갑자기 주어지지 않는다.

 

이미 기술을 연마하고, 몸을 관리하고, 시장의 변화를 공부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자기 언어를 가지려면 독서와 글쓰기를 위한 시간까지 더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40대 창작자에게 독서는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취미가 아니다.

 

지금까지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라도 매일 한 시간씩 읽어야 한다. 독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책 한 권은 이미 한 작가의 세계관이다. 좋은 언어와 오랜 생각, 한 사람의 생에서 건져 올린 통찰이 압축되어 있다. 어떤 강의보다 깊을 때가 많다.

 

좋은 책 한 권은 카운슬러이자 스승이다.

 

열 권, 스무 권이 쌓이면 단순히 문장력이 좋아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생기고, 자기 안에는 어떤 세계가 있는지 돌아보는 성찰이 축적된다.

 

그때부터 단순히 인스타그램 카드뉴스 하나를 쓰더라도 감각이 달라진다.

 

어떤 문장으로 시작해야 사람을 멈춰 세울 수 있는지, 어떤 순서로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지, 무엇을 빼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글들이 쌓이면 자신의 스토리텔링이 된다.

 

사람들은 결과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물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태도까지 함께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작업이 돈을 지불할 만한 것인지 판단한다.

 

이것이 순서다.

 

사진만 잘 찍고,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사진만 계속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이제 돈으로 바뀌기 어렵다.

 

사진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어떤 브랜드나 창작물도 사람들에게 소비되려면 구매자의 입장에서 수천 번 고민해야 한다.

 

이 콘텐츠를 바라보는 사람은 무엇을 느낄까.

이 사람을 기억할 수 있을까.

돈을 내고 싶을까.

예약하고 싶을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추천하고 싶을까.

 

자신의 사진을 잘 찍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구매자가 그 사진의 차이와 가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일도 똑같은 무게를 가진다.

 

좋은 결과물은 사람의 시선을 한 번 멈추게 한다.

 

자기 언어는 그 결과물을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반복해서 쌓인 언어는 그 창작자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작업과 언어가 같은 방향으로 축적될 때, 비로소 하나의 세계관과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8. 경험을 기술과 시스템으로 바꾸는 능력

 

20대보다 40대가 나을 수 있는 것은 앞 장에서도 언급했듯이, 더 많은 경험과 그 경험에서 얻은 지혜다.

 

40대는 AI가 없던 시대를 통과했다. 본인이 직접 무언가를 해보고, 실패하고, 반복하지 않으면 경험을 얻기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아직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몸을 움직이며, 다시 시작하기에 체력적으로 크게 부담되지 않는 세대다.

 

이것은 40대가 가진 분명한 장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축적된 경험을 기술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기술로 바꾸어야 한다.

 

지금까지 취미로 무언가를 깊게 덕질했든, 업으로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해왔든 그것이 상업적인 가치로 전환되려면 정교한 기술과 반복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취미로 집에서 빵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던 사람이 실제로 베이커리를 창업해 매일 손님에게 빵을 판매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집에서 커피를 즐기며 원두와 추출법을 연구해온 방구석 커피 마니아가 카페를 차린다고 해서 반드시 잘되는 것도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맛있다”, “잘한다”고 말하는 것과, 매일 돈을 받고 일정한 수준의 결과물을 제공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상업적인 일에서는 한 번의 좋은 결과보다 반복 가능한 결과가 중요하다.

 

오늘 잘한 것을 내일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장소와 상황이 달라져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은 창작자의 영감이 좋은 날만 골라서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본 작가에게 그것은 조명과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나는 촬영의 100%를 출장으로 진행한다. 촬영 장소의 크기와 천장의 높이, 벽의 색, 들어오는 자연광과 이동 동선이 매번 다르다.

 

그러나 오랫동안 쌓아온 사진 수련과 빛에 관한 이론을 바탕으로, 어떤 장소에서도 일정한 노출감과 완성도를 가진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사용하는 조명의 개수, 조명에 장착하는 액세서리, 피사체와 조명의 거리, 피사체와 촬영자의 거리까지 모두 계산하여 적용한다.

 

모니터의 위치와 촬영자 사이의 거리, 고객과 스태프가 이미지를 확인하는 동선 역시 매뉴얼화된 범위 안에서 배치한다.

 

그 결과 이미지의 편차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촬영 장소가 달라져도 고객은 거의 비슷한 완성도와 밀도를 가진 결과물을 받게 되었다. 베이커리로 비유하자면, 어느 날 방문해도 비슷한 맛과 품질의 빵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필요한 장비 목록과 수량도 정리되어 있다. 촬영장에 가져가야 할 장비, 차량에 싣는 순서와 위치, 현장에서 장비를 꺼내고 설치하는 순서까지 점차 하나의 시스템으로 안정화되었다.

 

내가 취미로 키즈 선수 한 명을 촬영하고 돌아오는 것이라면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현장에서 즉흥적인 실험을 해볼 수도 있고, 평소라면 시도하지 않을 도전적인 조명 구성을 적용해볼 수도 있다. 실패해도 괜찮다. 돈을 받지 않았고, 취미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찍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식으로 베이커리나 카페를 운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손님이 올 때마다 빵맛이 달라지거나, 커피 맛이 바리스타의 그날 기분에 따라 바뀌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사용하고, 어떤 순서로 만들며, 어느 수준까지 확인할 것인지가 매뉴얼화되어야 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돈을 받고 촬영한다면 “그날 감이 좋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좋은 결과를 반복해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의외로 많은 사진작가에게 취약한 부분이다.

 

사진은 감각과 창의성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작업 방식을 수치와 순서, 거리와 과정으로 정리하는 일을 창작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스템은 창작을 억압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인 품질을 시스템이 담당해주기 때문에, 창작자는 그 위에서 더 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부산에서 유명한 카페를 넘어 세계에서 찾는 카페가 된 모모스커피의 일상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직원이 새벽부터 출근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날 수돗물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물의 경도와 알칼리도를 측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커피 추출 세팅을 매일 다르게 조정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고객은 그 과정까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저 오늘 마신 커피도 맛있다고 느끼고 돌아갈 뿐이다.

 

그러나 고객이 매일 비슷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질을 측정하고, 추출값을 조정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좋은 시스템은 고객에게 시스템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항상 좋은 결과로 느껴진다.

 

창작자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의 원고를 쓰는 수준까지 가지 않더라도, 40대의 황금 같은 시간을 허무하게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자신의 생활을 어느 정도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언제 일을 시작할 것인지, 하루에 어느 정도의 작업을 할 것인지, 기술을 연마하는 시간과 책을 읽는 시간, 운동과 회복의 시간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정하고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하고 싶을 때만 일하고, 영감이 생길 때만 창작하는 방식으로는 오랫동안 일정한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

 

40대에는 경험은 많아졌지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오히려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되는 판단과 행동을 매번 처음부터 고민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경험을 축적하여 기술로 만들고, 그 기술이 언제나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경험이 머릿속에만 남아 있으면 감각이다.

 

그 경험을 설명하고 반복할 수 있게 되면 기술이 된다.

 

그리고 그 기술이 상황과 사람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계속 작동하게 만들면 시스템이 된다.

 

40대 창작자가 가진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는 자산이 아니다.

 

다음 결과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어낼 때 비로소 자산이 된다.

 

 

 

 

 

 


 

 

9. AI를 사용하되 자기 판단을 넘기지 않는 태도

 

AI를 두고 한쪽에서는 말한다.

 

“AI를 쓰면 창작이 아니다.”

 

“AI는 인간의 일을 빼앗는다.”

 

“나는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

 

반대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다 AI가 해준다.”

 

“글도 AI에게 쓰라고 하면 된다.”

 

“이미지도 버튼만 누르면 나온다.”

 

“굳이 공부하거나 기술을 익힐 필요가 없다.”

 

둘 다 위험하다.

 

AI를 무조건 거부한다면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사고 도구 중 하나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반대로 AI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태도는 인간으로서의 창작과 서사, 기술과 생각까지 함께 내려놓겠다는 의미가 된다.

 

AI를 외면해서도 안 되고, AI에 종속되어서도 안 된다.

 

나의 경우에는 AI를 생각의 거울로 사용한다.

 

첫 번째 기능은 메타인지다.

 

내가 하고 있는 창작 작업을 AI라는 거울에 먼저 비춰본다. 심지어 내가 촬영한 사진들까지도 보여준다.

 

과거에는 내가 촬영한 작품을 카카오톡 단체방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보내며 어떤 느낌인지 말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피드백은 굉장히 분절된 파편에 가까웠다.

 

사람마다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식과 생각이 모두 달랐다. 물론 나는 그 의견들을 종합했고, 서로 다른 반응 사이에서도 들을 만한 의견은 수용했다.

 

AI가 등장한 뒤에는 이러한 첫 번째 외부 반응을 AI를 통해 확인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번 촬영 작업물은 어때?”

 

“이 릴스를 곧 업로드하려고 하는데 편집은 어때?”

 

“사람들은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아?”

 

“이 카드뉴스는 어디에서 이탈할 것 같아?”

 

이런 질문을 던지며 내가 만든 결과물이 외부에서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 먼저 살펴본다.

 

다만 여기에는 분명한 주의가 필요하다.

 

AI의 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AI의 답은 실제 고객 한 사람의 생생한 반응이라기보다, 방대한 데이터에서 추출된 평균적인 반응에 가깝다. 인간의 언어를 다루지만, 그 작품을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하는 인간은 아니다.

 

그러므로 AI가 제시한 답을 다시 비틀어보아야 한다.

 

그 답이 실제로 이 창작물을 구매할 사람의 시각과 맞는지, 나의 세계관과 충돌하지는 않는지, 지나치게 평균적인 판단은 아닌지 다시 살펴야 한다.

 

이 점을 이해하고 사용한다면 AI는 굉장히 좋은 바로미터가 된다.

 

창작자는 생각을 계속 검증해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어떤 작업을 해보려 하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지, 이런 상품 구성이 특정 계층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이 카피가 사람들에게 읽힐지 아니면 그냥 지나쳐질지 하루 종일 생각한다.

 

창작자의 머릿속은 늘 이런 질문으로 가득하다.

 

그 생각들을 AI에게 메모를 남긴다고 생각하고 적어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별것 아닌 조각처럼 보였던 생각이 확장해볼 만한 가설이 되기도 하고, 생각이 더 발전했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 미리 살펴볼 수도 있다.

 

그래서 창작자에게 AI는 단순한 질문창이 아니다.

 

생각을 저장하는 창고이자, 사고의 확장을 돕는 제2의 뇌처럼 기능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제2의 뇌는 두 번째 판단권자를 뜻하지 않는다.

 

생각을 저장하고, 연결하고, 확장해주는 보조 장치라는 의미다.

 

이것이 창작자로서 가장 이상적인 AI 활용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런 AI 활용에서 앞 장에서 언급한 창작자의 언어가 매우 중요해진다.

 

AI는 질문자의 수준에 맞는 답을 내놓는다.

 

단순한 질문에는 단순하고 평범한 답이 돌아온다. 반면 질문자 내부에서 복잡한 사고 과정을 거쳐 나온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질문에는 훨씬 짜임새 있고 확장 가능한 답이 나온다.

 

언어적 사고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서도 등장한다.

 

AI를 자신의 제2의 뇌나 사고의 스파링 파트너로 삼고 싶다면, 먼저 사용자 자신의 복싱 실력이 올라와야 한다.

체급이 맞아야 한다.

 

창작자 자신에게 논리적 구성과 경험, 창작력과 판단 기준이 없다면 AI 역시 그럴듯하고 평범한 답 이상을 내놓기 어렵다.

좋은 AI 활용은 프롬프트를 화려하게 쓰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 안에 무엇이 축적되어 있는가에서 시작한다.

 

본 작가의 경우에도 글을 쓸 때 먼저 스스로 생각한 글의 형태를 만든 뒤 AI에게 보여준다.

 

“어느 부분이 약한가.”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곳은 어디인가.”

 

“반복되는 부분은 없는가.”

 

그러면 AI는 수정 방향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 제안을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때로는 다시 따져 묻는다.

 

“그 부분은 내 언어와 세계관이다.”

 

“그 표현은 고치지 마라.”

 

“나는 평범해질 생각이 없다.”

 

이런 식으로 주고받으며 문장이 다듬어진다.

 

인스타그램 피드 글과 릴스 자막, 카드뉴스의 문장도 이런 과정을 거쳐 등장한다.

 

AI가 문장을 정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는 내가 결정한다.

 

AI에게 판단의 주권을 넘겨서는 안 된다.

 

AI의 답이 틀렸거나, 방향이 나와 맞지 않거나, 중요한 개성이 제거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는 자기만의 검열 감도가 필요하다.

AI의 문장이 매끄럽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나의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틀리지 않은 문장과 내가 정말 믿는 문장은 다르다.

 

앞으로 AI를 이용해 창작을 보조받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AI는 누구에게나 빠른 속도와 많은 선택지를 제공할 것이다. 비슷한 자료를 정리하고, 비슷한 카피를 제안하고, 비슷한 이미지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그 안에서 자기만의 차이를 만들려면 AI를 측정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AI가 제시한 답에 자신의 경험과 논리를 더하고, 필요 없는 것은 덜어내고, 끝까지 자기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

 

AI가 무엇을 잘하는지 보는 눈도 필요하지만, 무엇을 모르는지 보는 눈은 더 중요하다.

 

AI는 사용자가 지휘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창작자가 AI에 종속된다면, 그 결과물은 평균의 무덤에 묻히게 된다. 고객은 수많은 비슷한 창작물 사이에서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찾지 못할 것이다.

 

40대는 경험이 많다.

 

AI가 없던 시대부터 직접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실패하고, 선택하고, 반복하며 경험을 몸으로 통과해왔다.

 

그 경험은 AI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 배신당한 감각, 돈을 잃었을 때의 두려움, 오랜 시간 기술을 반복하며 손에 남은 감각, 고객의 표정에서 읽어낸 미세한 반응은 데이터만으로 완전히 대체될 수 없다.

 

그 경험을 언어와 논리로 엮을 수 있다면 AI는 그 위에서 훨씬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

 

경험이 없는 사람이 AI를 사용하면 평균을 빠르게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경험을 자기 언어로 정리한 사람이 AI를 사용하면 자기 세계를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

 

AI에게 속도는 맡겨도 된다.

 

확장도 맡길 수 있다.

 

그러나 방향과 판단, 마지막 선택은 끝까지 창작자의 몫이어야 한다.

 

 

 

 

 


 

10.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이름으로 호명되는 능력

 

언젠가 수련생 문의를 남긴 사진작가가 있었다.

 

그는 현재 웨딩사진으로 돈을 아쉽지 않게 벌고 있는 듯했다.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상업적인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사진을 제대로 한번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의 포트폴리오를 보내보라고 했다.

 

사진들은 웨딩의 순간을 무난하게 기록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인상은 남기지 못했다. 누가 촬영했는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평균적이었다. 다른 사진가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이미지였다.

 

웨딩 시장 안에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과, 사진가 개인의 이름으로 기억될 만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미 웨딩사진으로 잘 일하고 있는데, 왜 나에게 사진을 배우고 싶은가.

 

그는 무언가 변화해야 한다는 느낌은 들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금은 웨딩사진을 찍고 있지만, 언젠가 웨딩 이후의 사진을 해야 할 때가 온다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비전이 그려지지 않는 상태였다.

 

나는 그에게 수련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웨딩사진작가 아무개가 아니라, 사진작가 아무개로 호명될 수 있는 기술력과 창의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기로 돌아가 조명과 포토샵, 브랜딩을 다시 훈련해야 했다.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누구에게도 쉽게 대체되지 않을 기술력을 가져야 시장 단가를 높일 수 있다. 그리고 브랜딩은 그 사람의 관점과 서사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어 사람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킨다.

 

그렇게 되면 수년 뒤 웨딩 시장이 축소되거나,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체력적으로 지금과 같은 촬영을 이어가기 어려워지더라도 사진가로서의 이름은 남는다.

 

장르가 그 사람의 사진을 제한하지 않게 된다.

 

플랫폼이 바뀌어도 자기 이름으로 증명할 수 있고, 새로운 시장에서도 다시 일할 수 있는 기술자가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핵개인의 시대, 호명사회에서 그는 웨딩업체 대표 아무개가 아니라 사진가이자 창작자, 브랜더 아무개로 불릴 수 있다.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장르만 남기지 않는다.

 

자기 이름을 남긴다.

 

그는 지금 자신의 기본 기술을 연마하고, 비전을 키우며, 앞으로의 방향을 다시 설계해야 했다. 그도 이제 40대 초입이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감지한 것만으로도 상당히 좋은 출발이었다.

 

결국 그는 나의 제자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느낀 불안은 모든 40대 창작자와 브랜더가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현재 하는 일이 괜찮다면 사람은 좀처럼 변화를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매출이 나오고, 고객이 있고, 익숙한 방식으로 일이 굴러가면 굳이 기본기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울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나 지금 잘되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촬영 장르는 줄어들 수 있다. 플랫폼은 사라질 수 있다. 고객의 취향은 바뀐다. 지금 잘 팔리는 상품도 어느 순간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어떤 장르에서 일하고 있느냐가 아니다.

 

그 장르가 사라진 뒤에도 시장이 나를 다시 불러야 할 이유가 남아 있는가다.

 

웨딩이 사라져서 위험한 것이 아니다.

 

웨딩이 사라졌을 때 그 사람을 다시 불러야 할 이유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더 위험하다.

 

대한민국의 평균수명은 이미 80세를 넘었다.

 

지금 40대라면 앞으로도 수십 년의 삶이 남아 있다. 의학과 생활 환경이 발전하면서 과거보다 훨씬 긴 노년을 살아갈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런데 60대 이후의 삶을 아무 준비 없이 방치한다면 곤란하다.

 

건강관리도 중요하지만, 자기 기술로 시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직업적 구조가 없다면 노후는 쉽게 흔들릴 수 있다.

 

퇴직 이후에도 많은 사람이 다시 일자리를 구한다. 낮은 임금과 좋지 않은 조건에도 생계를 위해 경쟁한다.

 

그 나이가 되어 새로운 기술을 처음부터 배우고, 몸을 쓰는 일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한국의 높은 노인 빈곤 문제 역시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내가 20년, 30년 뒤에 마주할 수도 있는 현실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지금부터 한 명의 기술자가 되고,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자가 되고, 자신의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브랜더가 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기술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사진을 찍든, 커피를 만들든, 상품을 기획하든, 어떤 사업을 운영하든 마찬가지다.

 

커피를 한다면 원두와 추출, 물과 온도, 유통과 매장 운영의 구조까지 깊이 알아야 한다.

 

사진가라면 조명을 공부해 빛을 이해하고, 사진가의 작업대와 같은 포토샵의 원리도 알아야 한다.

 

기술에 구멍이 있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

 

당장은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다시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듯 기본기로 돌아와야 한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다음에는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자가 되어야 한다.

 

사진만 잘 찍으면 된다는 말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가 되었다.

 

사진을 어떤 이야기와 상품으로 구성하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도달하게 할 것인지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 과정에는 영상 편집과 카피라이팅, 콘텐츠 기획과 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진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지속적으로 세상에 비춰져야 한다.

 

이미지만 보여주고 사람들이 알아서 이해하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야 팔린다.

 

사진가는 자신이 하나의 브랜드라는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기술과 시스템 위에서 자신의 결과물을 하나의 상품처럼 설계하고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

 

가죽 장인이 만드는 브리프케이스에는 가죽 이상의 철학이 있다.

 

평양냉면 장인이 만드는 냉면에는 맛 이상의 시간과 방식이 있다.

 

안경 브랜드가 만드는 안경에는 시력을 보조하는 도구 이상의 디자인 철학이 있다.

 

모든 것이 브랜드다.

 

그런데 사진가는 자신이 브랜드라는 의식이 유난히 적다.

 

스스로를 단지 포토그래퍼라고 생각하고 만다.

 

포토그래퍼라는 말에는 빛을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제 빛을 기록하는 일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 카메라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고, AI와 자동화 기술은 그 과정마저 계속 쉬워지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왜 그 피사체에 그런 빛을 비추었는가다.

 

그 결과물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

 

보는 사람에게 어떤 감각과 생각을 남길 것인가.

 

그들이 왜 돈을 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기술과 창작, 언어와 서비스, 상품과 경험이 같은 방향으로 쌓이면 그것을 세계관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람들은 촬영의 세부 사항을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조명을 몇 대 사용했는지, 셔터스피드가 얼마였는지, 보정 과정이 몇 단계였는지를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촬영하던 날의 기분과 자신이 어떤 사람처럼 대우받았는지, 결과물을 처음 받아보았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 붙여 기억한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사건의 세부가 아니라, 자신이 그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 이야기다.

 

그 기억의 형태를 만드는 껍데기가 브랜드의 세계관이다.

 

당신의 사진은 고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남겨줄 것인가.

 

당신의 브랜드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게 될 것인가.

 

사진 몇 장만 잘 나오면 불분명한 옵션과 형편없는 서비스, 엉성한 응대가 모두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진도, 서비스도, 상담도, 가격도, 결과물을 전달하는 방식도 모두 같은 세계관 안에 있는 구성품이다.

 

구성품은 당연히 완전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다.

 

40대가 된 뒤 나는 내 업에서 겪은 실패를 돌아보며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의 시선을 위한 외적 성장이 아니라, 실제로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내적 성장에 집중하기 시작한 이유다.

 

자기 기술을 키우는 것은 어떤 시장에서도 다시 호명될 수 있는 이름을 갖기 위해서였다.

 

글쓰기와 책 출간, 브랜딩 공부는 사진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넘어 더 다양한 영역에서 내 생각과 작업을 남기기 위해서다.

 

운동과 건강관리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다.

 

관계를 정리한 것은 40대에 더욱 부족해진 자기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시장성이 만나는 일치감은 이 일을 오래 해도 된다는 믿음의 토대를 만든다.

 

자기 언어와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은 나의 창작물과 생각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다시 나를 호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시스템은 일정한 품질을 반복해서 생산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지탱하는 뼈대가 된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을 AI와 스파링하며 확장한다.

 

앞에서 말한 아홉 가지는 서로 떨어진 조건이 아니다.

 

결국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연결되어 있다.

 

장르가 바뀌어도, 플랫폼이 사라져도, 시장의 규칙이 달라져도 자기 기술과 판단으로 적응하며 계속 돈을 벌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사람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직함이나 소속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다시 불리는 사람.

 

자기 이름으로 호명된다는 것은 유명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시장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뜻이다.

 

오래 살아남는 창작자는 하나의 장르를 붙잡고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기술과 관점을 새로운 시장에 맞게 변형하며 계속 다시 불리는 사람이다.

 

나는 어떤 시장에서도 생존하고, 내 이름으로 호명되며, 오랫동안 기술자로 살아남기 위해 지금의 40대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