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그땐 그랬었다
사진을 처음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2008년,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이 멋있어 보였다. 박스를 까고, 통을 열고, 필름을 끼우고 촬영하는 그 모든 과정이 그저 멋있어 보였다. 숭례문 수입상가에서 Pentax MX라는 카메라를 구입해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첫 롤을 촬영했고, 딱 두 롤이 모였을 때 종로에 있는 현상소에 필름을 맡겼다. 그때 스캔으로 받은 사진 몇 장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기껏 찍은 것은 화장실 거울 앞에서의 셀카와 길거리 공중전화 같은 것이었다. 그다음 롤에도 날아가는 새를 찍거나, 산책길에 보이던 건물 유리창을 찍었다. 하지만 스캔본을 받을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일본에도 필름카메라를 가져갔다. 필름을 열 롤쯤 가득 챙겨갔던 것 같다. 그저 횡단보도를 찍고, 파란 하늘을 찍고, 검정 우산을 든 사람을 찍었다. 그게 내 사진의 전부인 줄 알았다. 나는 그 사진들에 꽤 만족했다. 물론 부족하다는 것도 알았다. 사진작가라는 세계 안에는 이것보다 더 대단한 것들이 있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느낌도 있었지만, 내 사진 세계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도 이미 희소해지기 시작한 필름카메라를 들고 혼자 외국까지 나가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기억은 꽤 멋진 것으로 포장되었다.
그 뒤로도 수많은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친구들은 한창 취직해서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다. 나는 당시의 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어찌 보면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는커녕 카메라를 메고 도피하듯 여행을 떠났다. 무언가를 제대로 시작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백지 상태나 다름없었는데도 뒤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책임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태국 북쪽의 어느 숲속에 있었다. 울창한 열대림을 오토바이로 다녔고, 가다 보니 계곡이 나와 바지를 걷고 오토바이를 끌며 물을 건너기도 했다. 숲에서 코끼리를 만났고, 곧바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만나러 가는지도,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게는 아무런 디렉션이 없었다. 단지 카메라를 들고 어디론가 떠나는 그 행위 자체가 당시 내 모든 것이었다.
직업 사진작가가 되기로 한 것도 순수한 내 의지는 아니었다. 취미로 사진을 찍은 지 7년쯤 되었을 때였다. 적어도 취미의 세계에서는 사진을 못 찍는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어느 날 투잡으로 스냅 사진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같이 해보지 않을래? 나는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다. 내가? 돈을 받고 사진을 찍는다고? 혼자 여행사진이나 풍경사진을 잘 찍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한 적은 있었지만, 돈을 버는 목적으로 카메라를 든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딱히 갈 곳도 없었다. 사진밖에 모르기는 했다. 결국 동료에게 설득되어 사업자를 냈다.
지금 생각하면 메타인지라는 것이 형성조차 되지 않았던 시기의 치기였다. 인물 사진을 찍는 기술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저 당시 유행하던 사진들을 모아 눈으로 익히고, 비슷한 장소에 가서 촬영했다. 그런데 운은 지독히 좋았다. 동료는 한국을 담당하고 나는 프랑스로 가보기로 했다. 예약을 열었더니 여섯 커플이 촬영을 신청했다. 가서 성심성의껏,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촬영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전혀 전문가의 그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고객들이 마음에 들어하니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줄 알았다. 조명도, 미학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 사진들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다음에는 더 많은 커플이 신청했다.
이탈리아로 몸을 옮기면서 판은 더욱 커졌다. 예약이 한 달 내내 꽉 차도록 들어왔다. 그렇게 팬데믹이 오기 전까지 세계를 누비는 생활을 했다. 그런 생활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독히 외로운 형태로 변해갔다. 어느 날 토스카나의 농장 사이에서 은하수를 촬영하고 밤을 새운 뒤 호텔 방에서 늦은 오후까지 잠들었다가 깼다. 커튼으로 막아놓은 창가 틈 사이로 미처 가리지 못한 강한 빛줄기 하나가 어두운 방을 찌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잠이 덜 깬 채 인스타그램을 열어보는 정도였다. 그때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강하게 물었던 것 같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아름다운 은하수와 농장의 새벽은 메모리카드 안에 잘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앞으로의 내 길인가, 라는 물음에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디렉션이라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디렉션’은 지금에 와서야 붙일 수 있는 단어다. 그때 내 나이는 이미 삼십 대 초반이었다.
나는 한때 내가 사진을 꽤 괜찮게 찍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팬데믹과 함께 그 생각은 산산조각이 났다. 해외로 나갈 수 없게 되면서 스냅 촬영은 사실상 폐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철저한 계획도 방향도 없이 시작한 스튜디오 창업은 박살이 나고 있었다. 스튜디오를 차리면 즐거울 줄 알았다. 내 공간이 생기고,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고, 사람들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대로 된 계획은 하나도 없었다. 일단 공사를 시작했고, 땜질하듯 공간을 만들었다. 계획은 수시로 바뀌었고, 스튜디오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졌다. 정말 멍청하게도 큰돈을 지출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조언을 청할 사람은 있었을까? 사람들은 많이 사귀었지만, 그들은 조언을 해줄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창업하기 전에 업계 경험이 많은 단 한두 사람에게만 제대로 조언을 구했더라도, 그 어두운 그림자를 만나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주특기는 스냅 사진이었다. 물론 팬데믹 전부터 조명 공부를 시작하기는 했다. 그 과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이미 2018년부터 무거운 조명을 두 대, 세 대씩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서 인물 촬영을 시도했고, 책을 읽고 해외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조명과 액세서리를 공부했다. 하지만 깊지 못했고, 연속적이지도 못했다. 팬데믹 무렵의 나는 조명을 전혀 못 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뛰어나게 쓴다고 말할 수준도 아니었다. 그 공부가 앞으로 내 미래의 모든 것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나는 뻔한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통하는 사진이 사진작가로서의 디렉션이라고 착각한 적도 많았다. 그러다가 인스타그램스럽게 찍지 않으면, 나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웠다. 뭘 해도 엉망이었다. 지금 내가 늘 말하는 것, 사진에 대한 수련과 조명 공부가 프로페셔널로 직통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전혀 몰랐다. 모아둔 돈과 시간도 제대로 투자할 줄 몰랐다.
개인 취미도 많이 가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취미가 있었다. 그냥 내키면 헬멧을 쓰고 시동을 걸어 남한강이나 북한강으로 떠났다. 가다 보니 동해까지 간 적도 있었다. 맛집을 찾아 막국수를 먹고, 전망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콧구멍에 바람을 쐬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사치인지 몰랐다. 심지어 2018년과 2019년에는 게임도 너무 많이 했다. 플레이스테이션, 네 놈 때문이다. 갓 오브 워, 라스트 오브 어스, 스파이더맨, 바로 네놈들 때문이다. 그런 것을 즐길 수 있는 워라밸을 가지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권리라고 착각했다. 프리랜서니까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고, 한두 시쯤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켜고 조금 일하다가, 다섯 시가 되면 노트북을 접고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가졌던 것은 균형이 아니었다. 아직 충분히 배우지도 않았고, 실력을 쌓지도 않았고, 미래를 준비하지도 않은 사람이 휴식과 자유만 먼저 자기 권리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해야 할 일을 다 해낸 사람의 워라밸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의 워라밸은 같은 것이 아니다. 나는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때는 돈이 적당히 벌렸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사진을 곧잘 찍으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튜디오가 나락으로 떨어진 뒤 외부에서 사진 일을 구해보려고 구인구직란을 찾아보니,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보였다. 대부분 저임금을 받으며 거의 몸으로 때우는 사진 일이었다. 그때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난 뭐지?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팬데믹은 예술인과 사진작가들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도 자전거 배달이나 쿠팡 배달을 시작했다. 솔직히 나도 흔들렸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 사람은 망한다. 상업사진이라는 개념도 그때서야 제대로 챙기기 시작했다. 겸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맞을까? 오래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대신 미래를 위해 정말 제대로 준비해보기로 했다. 스포츠 장르 촬영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하나씩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철이 들었던 것 같다. 최악의 상황이 되고 나서야 철이 든 것이다. 공부 하나도 하지 않아 시험을 망치고 뒤늦게 다시 시작하는 재수생처럼.
심지어 스튜디오업을 함께 일군 동료는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다. 모든 것이 사기였다. 민사소송도 벌어졌다. 다행히 소송에서는 완승했다. 하지만 내가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있었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사기였다. 계약서에 내 의견을 꼼꼼하게 반영했더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순진한 나는 사람을 꽤 믿었다. 이제는 믿지 않는다. 일의 실력과 성실함으로만 검증한다. 그 뒤로 친구도 거의 다 끊었다. 지금 내 친구들은 헬스장에 있다. 덤벨과 케이블 같은 멋진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나는 넋을 놓고 살면서 자기 철학만큼은 열심히 챙겼다. 인간으로 태어난 목적 같은 것을 따지고 생각했다. 지가 무슨 소크라테스라도 된 것처럼. 지금은 그게 무엇인지 아주 잘 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생각하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그 외의 것은 네 인생에 사치야. 요즘은 이 생각밖에 없다. 지금은 내가 꿈꾸는 성공이 목전에 다가왔다. 정말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성공 앞에 몇 걸음밖에 남지 않았는데, 자기 자신이 어쩌고저쩌고 생각할 시간조차 아깝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이십 대와 삼십 대에 이미 너무 많이 가졌다. 종교에도,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그건 말이야, 네 놈한테는 과분한 시간이었어.
내 인생을 수렁으로 빠뜨리면서도 그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던 십여 년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바보 같은 시기가 있다. 나는 꽤 장기적으로 바보였다. 그러면서도 그 생활을 삶의 권리나 자유의지 같은 보이지도 않는 것들로 덮었다. 그런 우아한 옷을 입고 다녔다. 누군가에게 자유의지 같은 소리나 하고 있었고, 스스로 꽤 깊은 생각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했다. 실로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왜 사진을 정식으로 누군가에게 배우러 가지 않았을까. 제대로 된 멘토 한 명만 있었더라도,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배웠더라도 사진이라는 세계 안에서의 방종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경험과 지혜를 얻을 수도 있었고, 창업 실패 같은 일을 정통으로 얻어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진작가의 본질은 자유야, 내가 하는 게 형식이고 내 시선이 중요해, 같은 청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대사를 중얼거리고 다녔다. 기술도 모자란 녀석이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조언자들을 많이 사귀고 집요하게 따라다닐걸. 차라리 스튜디오 어시스트 생활이라도 해볼걸. 스냅 사진을 찍을 때는 찍더라도, 어느 스튜디오에 가서 무일푼으로라도 상업사진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워볼걸. 이제 와서 그런 후회를 해봐야 나는 이미 폐업의 빔을 맞고 정신을 잃은 뒤였다. 결국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되어서야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아프지 않을 때 제대로 된 디렉션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인생의 굴곡을 조금은 따뜻하게 덮어둘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나에게 말하듯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한다. 제발 멘토에게 배우라고. 제발 정신을 차리라고. 제발 아직 아무것도 쌓지 않은 상태에서 삶의 균형부터 찾지 말라고. 여러분의 삶의 밸런스는 모두 사진에 몰아넣어도 될까 말까입니다. 그것을 힘든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나중의 삶을 위한 조정이라고 생각하시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제대로 듣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강의를 지속적으로 여는 이유도 이런 말을 해주기 위해서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을 정말 찾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더 큰 목소리로 말한다. 가장 힘든 시기에 내가 수련한 내용을 나누고, 그때의 정신력까지 함께 나눈다. 강의 때마다 상업사진의 의미와 사진가의 자세, 자신의 위치를 아는 일에 대해 강조한다. 여러분 솔직히 세계에서 사진으로 몇 등쯤 할 것 같아요? 나는 이 질문을 오륙 년 전의 준희에게 물어보고 싶다. 만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솔직한 고백을 좀 해봤다. 나에게도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철없던 시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누구보다도 우아한 방종을 즐겼다. 그리고 가장 아픈 때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프지 않을 때 정신을 차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진을 직업으로 삼기로 했다면 좋은 강의가 있을 때 찾아가 듣고, 좋은 작가가 있으면 따라다니며 물어보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의견을 들으며 자신의 위치를 좀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사진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사진을 정식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솔직히 사진을 잘 찍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시선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쉽게 믿어서도 안 된다. 자잘한 일거리를 따라다니는 것을 자신의 디렉션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당신의 이름이 깃들 수 있는 진짜 사진은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를 고통스럽고 절박한 순간이 오기 전에 들으면 오죽 좋을까. 배우고, 연습하고, 카피하고, 그다음에 창의하라. 이 단순한 절차를 직업 사진작가가 되기 전에 좀 해두시라.
안 그러면 이준희 작가처럼 제대로 한번 망해볼 수도 있다.

Amsterdam, Netherland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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