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사칙연산 - 운동과 덧셈 〈아직 53년 남았다〉
20대 때까지만 해도 나는 운동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부터 여행을 많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체력적으로 약하다는 느낌을 곧잘 받게 되었다. 오래 걷고, 낯선 도시를 헤매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이동하다 보면 자신의 체력 수준은 꽤 정직하게 드러난다. 그때부터 어떤 운동을 할까 고민하다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을 것 같은 운동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집 주변에 있던 복싱장을 찾게 되었다. 등록을 하고 나서 3개월 정도는 거의 죽음에 가까웠다. 주 5일을 복싱장에 나갔고, 복싱 수업이 끝난 뒤에는 코치가 시키는 웨이트까지 했다. 운동량이 많지 않던 사람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날들이었다. 하지만 진짜 한 번 참고 해보기로 했던 그 시기가 아마 내 체력을 몇 계단, 아니 몇 층은 올려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체력은 그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알고 보니 내가 코치 복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복싱 경험자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정도로 운동을 시키는 곳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원 투만 배우고 바로 링 위로 올라가 코치와 함께 스파링을 했다. 사람이 사람을 3분 동안 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죽도록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그렇게 복싱을 7년 동안 했다. 해외를 드나들면서도 한국에 있을 때는 꼭 복싱을 했다. 그리고 그 시기는 팬데믹과 함께 끝이 났다. 도저히 마스크를 쓰고 복싱을 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한강으로 나가 뛰기 시작했다. 러닝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몇 킬로를 몇 분 동안 뛴다고 생각하며 달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러닝머신을 뛴 적은 있었지만 바깥에서 뛰는 것은 전혀 다른 뜀박질이었다. 복싱을 오래 해서 그런지 5km 정도 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점점 거리를 늘려가기 시작했고, 10km를 넘게 뛰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부산으로 이사 온 지 3년 차인 지금도 북항 친수공원을 거의 격일로 뛰고 있다. 이제는 루틴이 되어서 1시간 혹은 10km를 뛴다. 그 정도는 이제 내게 별로 힘든 코스가 아니다. 내내 의자에 몸을 처박고 모니터와 씨름을 하다가 부산 원도심의 정취를 품은 항구의 해변 공원을 뛰는 낭만은 내 삶의 행복이자 활력이다. 이러려고 내가 일했구나 싶은 순간이다.
그냥 뛰는 것이다. 좋아하는 러닝화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폴짝폴짝 뛰면서 몸을 풀다가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앞에서 시계를 켜고 뛰기 시작한다. 컨디션이 좋지 못하면 발폭을 좁게, 컨디션이 조금 좋으면 발목에 힘을 더해서 멀리 멀리 뛰어간다. 이곳은 여름이면 딱 석양이 진 직후부터 뛰기 아주 좋다. 잔잔하게 사그라드는 하늘의 빛깔이 서정적으로 항구를 감싼다. 잘 닦인 길, 쭉 뻗은 길을 따라 달리는데 나는 나의 엔진을 시험하듯 피치를 올린다. 자동차로 치면 RPM을 올리는 것과도 같다. 더 못 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잠깐만 참으면 된다. 숨을 조금 더 거칠게 쉬고 버텨본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다리가 돌아간다. 참을 인이다. 참자, 참자, 참자. 몇 번 중얼거리다 보면 참을 필요도 없이 여전히 뛰고 있다. 기록을 위한 러닝이 아니다. 자신을 위한 러닝이다. 러닝을 하면서 맞는 바닷바람은 머리결을 빗어넘기듯 정신을 가지런히 빗어준다. 산만한 것들로부터 정렬이 된다. 오거나이저처럼 뇌에 격자를 그려 정돈을 해주는 것 같다. 그 사이에 좋은 아이디어나 방향성도 많이 떠오른다. 몸도 발도 자꾸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자신의 디렉션도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의지도 생기고 에너지도 생긴다.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러닝을 “최고의 스트레스 백신”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표현이 정확하다고 느낀다. 달리기는 단순히 칼로리를 태우는 시간이 아니다. 불안과 피로와 산만함으로 흩어진 뇌를 다시 한 방향으로 정렬하는 시간이다. 러닝을 하면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정렬된다. 뇌는 더 이상 불안의 시뮬레이션만 반복할 수 없다. 발을 내딛고, 호흡을 맞추고, 몸의 균형을 잡는 일에 다시 참여해야 한다. 그 순간 뇌는 관념의 방에서 빠져나와 행동의 세계로 돌아온다.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같은 창작자의 뇌는 어떤 의미에서 매우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기본이며, 상업을 위한 창작으로 연결해야 하고, 고객의 심리를 파악해야 하며, 어떤 방법과 문법으로 고객에게 닿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입체적인 생각들이 늘 머릿속의 회로를 복잡하게 오가고 있다면, 러닝은 단순한 동작의 반복을 통해 그런 복잡한 것들을 정렬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것을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러닝은 충분히 그러한 측면에서 내게 도움을 주고 있다. 달리고 돌아온 날에는 문장이 더 잘 오고, 흐릿하던 방향성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몸도 발도 앞으로 나아가듯, 나의 디렉션도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지금의 운동 루틴 두 번째는 웨이트다. 무거운 것들을 들어 올리며 지속적으로 근육을 보강한다. 바디프로필을 찍으려고? 아니다. 나는 나만의 이유로 쇠를 든다. 바로 촬영을 위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서다. 내가 하는 스포츠 촬영 장르, 그리고 내 촬영에는 수많은 조명 장비들이 들어간다. 매번 출장 때마다 그것을 차에 싣고 내리고 설치하기를 반복한다. 엎드려서 극단적인 로우앵글을 만들 때도 있고, 런지 자세로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다. 만약 노화와 함께 근육이 퇴행한다면, 단언컨대 이 장르의 촬영은 절대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조명의 무게, 스탠드의 무게, 각종 장비들의 무게와 모니터, 노트북, 카메라와 렌즈의 무게는 모두 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근육이 없다면 이런 촬영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다. 어쩌다 하루는 할 수도 있겠지만, 다음 날 바로 온몸은 염증으로 가득 차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대체로 나의 현재 웨이트 프로그램은 후면근육과 코어근육, 그리고 하체근육으로 채워져 있다. 후면근육은 짐을 들 때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 시티드 로우나 덤벨 로우를 해보면 바로 알게 된다. 내가 짐을 들 때 등으로 들고 있는 것이구나. 어깨 근육 운동도 꾸준히 한다. 전면과 후면 삼각근은 카메라를 오래 들고 버틸 수 있는 힘을 만든다. 매우 필수적이다. 하부 광배근이나 엉덩이 근육, 복근은 오랫동안 앉아서 촬영하거나 불안정한 자세로 촬영한다고 하더라도 장시간 버틸 수 있게 해준다. 하체 근육 운동에 해당하는 런지나 스쿼트는 무릎을 꿇고 촬영할 때나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야 하는 촬영 환경에서 필수적이다. 물론 팔의 바깥쪽 영역인 삼두근 운동도 중요하다. 물건을 드는 힘은 보기 좋은 이두근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팔을 밀고 버티는 삼두근의 힘에서도 나온다. 가슴 운동은 요즘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내 촬영 환경에서는 보여지는 상체보다 장비를 들고 버티고, 낮은 자세를 유지하고,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후면근육과 코어, 하체가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웨이트를 한 지는 이제 2년 정도 되었다. 오랜만에 나를 만나는 사람은 외형이 너무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상체 프레임이 많이 커졌고, 제법 운동한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물론 외관적으로 탄탄한 모습은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러한 외적인 것을 추구하는 운동에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하는 촬영 시스템의 중심에는 결국 나라는 엔진이 있다. 그 엔진이 꺼지면 조명도, 카메라도, 디렉션도 함께 멈춘다. 나는 그 엔진이 단 하루도 꺼지지 않고 최고의 집중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을지에 집중한다. 내가 지치고 병들면 다른 촬영자는 없다. 아픈 상태로 촬영을 나가면 촬영에 집중할 수 없다. 그러한 모든 상황에 앞서 건강이라는 보험을 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많은 사진작가들이 운동을 경시한다. 그러나 촬영은 몸을 비트는 행위다. 비정상적으로 어깨가 말리고 허리가 굽는데, 그 굽은 상태로 무거운 장비를 장시간 들게 되면 디스크가 압박을 받는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환경은 햄스트링과 무릎 주변에 문제를 준다. 지금 내가 하는 웨이트 종목들은 스스로 사진작가로서 오래 일하기 위해 정한 루틴이다. 반복만 하면 된다. 나는 종종 밝히지만, 120살까지는 살 것 같고 95세까지는 상업 사진작가로 일하고 싶다. 아직 53년이 남았다. 이 루틴을 53년 동안 반복할 예정이다.
운동 루틴 세 번째는 데일리 요가다. 요가를 처음 배운 지는 5년 정도 지났다. 요가원을 다닌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니지 않고 거의 매일 아침, 혹은 일하다가 틈이 날 때 요가 매트를 편다. 요가원을 다닐 시간은 없기 때문에 유튜브 영상을 틀고 따라 한다. 잘하지는 못해도 끊임없이 한다. 하다 보니 평균의 남성들보다 매우 유연한 편이 되었다. 러닝과 웨이트, 그리고 촬영으로 근육을 많이 당겨 쓰기 때문에 반대로 푸는 요가 스트레칭은 신체를 다시 정돈시켜준다. 몸이 이완되면 굳은 정신도 부드러워진다. 머릿속이 개운해진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느낌만은 아니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들은 요가와 같은 규칙적인 운동이 스트레스 조절, 집중력, 기억을 담당하는 뇌 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을 꾸준히 보고하고 있다. 나는 그 연구 결과를 내 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창작은 순환이 잘 되는 몸에서 나온다. 신체 상태에 따라 나의 창의력은 분명히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창작자이므로 나의 요가 루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촬영으로 인해 굳어가는 근육을 부드럽게 만드는 요가 스트레칭, 장시간 힘든 촬영을 하고 나서도 내 몸의 어디를 이완시켜야 할지 알고 하는 요가, 그것들이 다음 날도 촬영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준다. 요가 덕에 버틴다고 생각한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요가를 하는 삶과 요가를 하지 않는 삶이 나뉜다고 생각할 정도다. 내 삶은 특히 그렇다. 5년 전, 요가를 접하기 전에는 늘 목이 잘 굳어서 뻐근했다. 목을 돌려보기도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어지러워지는 적이 많고, 소화불량도 잦았다. 많이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고, 또 잠이 왔다. 신체에는 늘 피로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요가를 만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한국에서는 여성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남자들은 접근할 생각을 잘 하지 않는 운동이지만, 요가는 사실 운동 이상의 것, 수련의 성격을 가졌다. 자신의 몸을 잘 알게 해준다. 나 역시 그랬다. 몸의 어느 부분이 막혀 있는지, 어디가 굳어 있는지, 어느 부위를 풀어야 숨이 깊어지는지 조금씩 감을 잡게 된다. 자신의 몸을 잘 알아야 정신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 요가 예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 신체가 증거다.
나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운동 루틴을 거의 쉼 없이 돌린다. 물론 촬영이나 일정 때문에 못하는 날은 아침에 눈을 뜨면 요가만 하는 날도 있다. 요가도 안 하는 날은 거의 없다. 별 문제가 없다면 하루는 러닝, 하루는 웨이트, 다음 날 다시 러닝, 다음 날 다시 웨이트, 하루 쉬고, 다시 러닝. 이러한 루틴을 계속 이어간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는 인간의 신체를 부여받은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창작과 촬영은 많고, 약한 신체를 매일매일 끌고 가야 하기에 극단적으로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모두 사진을 하고 싶어서, 창작을 하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 이 세계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이것이 나의 운동 루틴의 목적이다. 나는 이러한 운동이 창작의 세계 안에서 끊임없는 덧셈을 해준다고 믿는다. 하루하루를 더하는 것이다. 러닝을 더하고, 웨이트를 더하고, 요가를 더한다. 더할수록 나는 더 집중력 있는 촬영을 할 수 있다. 무거운 장비를 문제 없이 들어 올릴 수 있다. 창작에 대한 이미지를 더 선명하게 그릴 수 있다. 매일 하루씩 더하면 된다. 머리가 맑아지면 독서도 잘되고 글도 잘 써진다. 책도 쓸 수 있고, 콘텐츠도 더 잘 만들 수 있다. 그냥 의심 없이 하루씩 덧셈만 하면 된다. 1세트를 마치면 2세트를 더한다. 친업 턱걸이를 마치면 시티드 로우를 더한다. 계속 더하는 것이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이어지는 덧셈은 분명 나의 창작의 재료로 멋지게 연소될 것이라 믿는다. 믿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마치 톱니바퀴가 척척 돌아가듯이, 연료 분사를 받은 엔진이 쉼 없이 폭발하듯이.
나는 창작을 위해 산다. 상업 사진을 하기 위해 산다. 이것이 나의 온전한 디렉션이다. 그 외의 것은 지금 거의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덜어낼 것들을 덜어냈더니 더해야 할 것들이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 나름의 재미와 낭만이 있다. 예전에는 일 안 하고 놀러 다니는 것이 낭만이자 삶의 낙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미친 듯이 포토샵 안에서 씨름하다가 선선한 저녁에 뛰어나가는 그 보람찬 느낌이 있다. 다리를 죽어라 앞으로 돌리며 자신의 동력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무거운 쇳덩이를 끌어당기며 집중하는 순간의 즐거움이 있다. 아마 누군가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겠지만, 앞으로 뛰는 삶 자체에 몰입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가끔 하루 정도 배를 타고 대마도라도 다녀오면, 그게 또 낙이겠지. 나는 앞으로도 건강과 삶을 위해 덧셈을 이어갈 생각이다. 아직 찍어야 할 사진이 많고, 써야 할 글이 많다. 그러니 오늘도 하나를 더한다. 한 걸음을 더하고, 한 세트를 더하고, 한 호흡을 더한다. 그리고 그 모든 덧셈이 언젠가 나의 사진과 문장 안에서 다시 타오를 것이라 믿는다.


'방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에게는 피자가 없었고, 그들에게는 조명이 없었다 (1) | 2026.07.03 |
|---|---|
| 창작의 사칙연산 - 벡터합 〈세계관〉 (0) | 2026.06.30 |
| 절박한 인간에게 AI는 활이 된다 (1) | 2026.06.24 |
| 창작의 사칙연산 - 독서와 곱셈 <창의성의 반대말은 카피다> (3) | 2026.06.17 |
| 창작의 사칙연산 - 여행과 뺄셈 <물어볼 사람이 없을 때 취향이 생긴다> (1) | 2026.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