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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창작의 사칙연산 - 여행과 뺄셈 <물어볼 사람이 없을 때 취향이 생긴다>

 

 

 

 

창작의 사칙연산 - 여행과 뺄셈 

 

 

물어볼 사람이 없을 때 취향이 생긴다

 

 

 

팬데믹 이전의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여행을 했다. 그것은 카메라라는 취미가 생겼던 201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가까운 일본에서 시작해 동남아시아와 몽골, 유럽의 여러 도시들, 그곳에서 조금 더 이어진 모로코, 북쪽의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미국의 일부 지역, 그리고 쿠바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내 여권에는 각국의 스탬프가 빼곡했다. 카메라를 처음 접했고, 여행 사진을 잘 찍는 사진작가들의 이미지에 감명받았고, 나도 그런 장면을 더 잘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갖기 전까지 나는 해외에 나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카메라를 손에 쥔 이후, 여행은 취미를 넘어 방랑벽이 되었다. 낯선 도시를 걸으며 내가 본 것을 이미지로 가져오고 싶었고, 그 이미지가 나를 또 다른 도시로 밀어냈다. 그렇게 시작된 이동은 팬데믹으로 항공로가 닫히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출국이 2020년 1월이었으니 정말 그랬다.

 

나는 이전 에세이 《빛과 디렉션》에서도 이 시기의 여행이 내게 남긴 것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여행에서 쌓은 경험과 당돌한 자신감은 이전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업 사진작가로의 입문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 책에서도 고백했듯, 그 입문의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워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고치느라 꽤 큰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어쨌든 해외 스냅 사진작가를 겸하게 되면서 여행의 기회는 더 늘어났고, 그 여행들의 밀도도 점점 깊어졌다. 나는 기본적으로 어떤 상황과 사건 앞에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여행 순간들이 그랬다. 마르세유에 있으면 이 도시의 역사와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함께 생각하고 싶었다. 모로코의 페즈에서는 여행자에게 유난히 가혹하게 느껴졌던 불편함의 이유를 따져보고 싶었다. 호치민에서는 한국의 일상 속에서는 쉽게 떠올리지 못했던 방대한 사람들의 움직임에 경탄했다.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던 오토바이 무리의 흐름은 마치 오디오의 이퀄라이저처럼 뭉쳤다가 흩어졌다. 그 시기의 여행은 단지 사진을 찍기 위한 이동만은 아니었다. 순간 포착에 대한 감각과 흥미를 넘어, 사진 바깥의 것들까지 내게는 늘 새로운 성찰의 페이지가 되어주었다.

 

그렇다고 여행 사진가로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인스타그램에서 한때 인기를 얻은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정말 한때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이라는 매개의 가치는 이미지의 포화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스위스 어딘가에서 찍은 아름다운 풍경은, 결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진이 되었다. 여행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도 나는 자주 의심했다. 내가 하고 싶은 사진이 타인과 비슷한 사진을 더 잘 찍는 일일까. 아니면 나만이 창작할 수 있는 독창성을 찾아가는 일일까. 그런 의구심은 2010년대 후반의 나를 흔들었고, 결국 한국 정착과 스튜디오 창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디렉션과 브랜딩 없이 껍데기만 있던 스튜디오는 결국 무너졌다. 돌아보면 그 실패 역시 내게 필요했다. 여행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고, 실패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만들었다.

 

그래도 여행은 내게 세포 이상의 것을 남겼다. 지금도 그 여행의 순간들은 문득 떠오른다. 에딘버러에서, 코르도바에서, 뉴욕에서 느꼈던 감각들이 인상주의 화법처럼 뭉툭하지만 빛나는 덩어리로 지나간다. 멍하니 있을 때 한 번씩 스쳐 지나가는 기억의 파편들은 늘 기분 좋게 남아 있다. 어떤 향을 맡으면 갑자기 그 시절의 공기가 되살아나는 것처럼, 여행의 장면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다시 살펴보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긴 여행들을 통해 세계를 본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반응을 본 것이었다.

 

나는 거의 대부분 혼자 여행했다. 가끔은 동행이 있던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였다.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진이었다. 사진가는 자유로워야 한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은 시간에 갈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물론 사진가가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로 가자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때의 빛이 가장 좋고, 그때의 공기가 가장 아름답고, 그때의 장소가 가장 입체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나서면 대부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동반 여행은 서로의 취향이 다를 수밖에 없고,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기도 쉽다. 먼 곳에 큰돈과 시간을 써서 나가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배려라는 이름으로 계속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갔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혼자라는 조건이 내 취향을 만들고 있었다.

 

혼자이기에 좋은 점은 나만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큰 범위에서는 지역, 나라, 도시를 정하는 것부터 나의 선택이었다. 보통 내가 어떤 곳에 가고 싶어졌다면, 특정 이미지에 마음을 빼앗겼을 가능성이 컸다. 나도 비슷한 이미지, 혹은 그것보다 더 뛰어난 이미지를 가져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어떤 시기에 갈 것인지, 도착해서는 도보 여행을 할 것인지, 오토바이를 빌릴 것인지, 기차로 이동할 것인지, 숙소는 B&B를 선택할 것인지 호텔을 갈 것인지, 어떤 출사 포인트에 갈 것인지, 어떤 시간에 움직일 것인지, 도시는 어떤 경로와 순서로 돌아볼 것인지,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 무엇을 사올 것인지까지 여행의 모든 순간이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선택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디렉팅한다는 개념이 어쩌면 여기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행이라는 큰 경로를 짜고,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집어넣고, 동선을 만들고, 먹고 마실 것까지 상상하는 일. 때로는 석 달 전부터 여행을 준비했고, 어떤 때는 전날에 갑작스럽게 비행기 티켓을 끊기도 했다. 준비 시간은 여행을 미리 결정짓는 서두의 한 페이지처럼 느껴졌다. 여행을 결정한 순간 계획이 시작되었고, 그 계획의 과정마저 선택의 즐거움으로 가득했기에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처럼 두근거렸다.

 

물론 경로는 여행 중에도 자주 바뀌었다. 동남아시아를 5주 동안 시계방향으로 순회한 적이 있었다.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올라갔고, 치앙마이에서는 조금 더 북쪽의 빠이로 옮겼고, 빠이의 한가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며칠을 더 머물렀다. 그러다 빠이에서는 더욱 북쪽까지 가보고 싶어졌고, 결국 매홍손이라는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 도시까지 닿게 되었다. 매홍손에서도 오토바이로 한참 더 들어가야 했던 카렌족 마을, 숲을 건너다 바짓단을 걷고 오토바이를 끌며 계곡을 도강해야 했던 아슬아슬한 기억, 불교사원들과 쫑캄 호수에 물감처럼 퍼지던 붉은 석양의 색, 한쪽에서 펼쳐지던 지역 마을 축제까지. 그 이동은 나만의 여행, 나만의 고유한 인상을 남겼다. 누구의 추천 여행도 아니었고, 그건 오직 나의 인상, 나의 독립된 추억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선택한 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내가 무엇에 더 오래 머무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런 여행 속의 선택은 나만의 취향이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각인시켜주었다. 일부러 의도한 취향 훈련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즐거움 속에서 생겼다. 식당을 고르다 보면 일관되게 드러나는 음식 취향이 생겼다. 나는 도시보다 자연을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을 선호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세계를 여행하기 전까지 나는 나를 잘 몰랐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선호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떤 공간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지, 어떤 빛과 냄새와 질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지 잘 알지 못했다. 여행을 한창 다니며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취향이 정말 많은 사람이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렇게 많구나. 그리고 그 좋아함에는 꽤 분명한 기준이 있구나. 아주 작은 것에도 집중하게 되는 부분이 있구나. 남들은 흘려보내는 것들인데도 나에게는 중요한 것들이 있구나. 그런 사소하면서도 다양한 것들이 사고와 성찰 사이에서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며 피곤한 성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왜 이 멘보샤는 꼭 칭따오 병맥주와 먹어야 정말 맛있는지, 왜 펩시제로가 코카콜라제로보다 낫다고 느끼는지, 고소하게 태운 다크로스팅 커피보다 왜 라이트로스팅 커피의 과실 산미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지. 그런 아주 사소하고 다양한 것들이 내 취향의 레이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 내 브랜드를 디렉팅하면서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취향은 거창한 선언에서 생기지 않았다. 여행지의 식탁에서, 낯선 슈퍼마켓의 진열대 앞에서, 비 오는 도시의 골목에서, 숙소 창가에 앉아 다음 날의 동선을 짜던 밤에 조금씩 생겼다.

 

 

굉장히 인상 깊었던 여행지를 꼽으라면 나는 언제나 쿠바를 말한다. 2018년 초에 갑작스럽게 떠났던 쿠바의 모든 것은 내게 꽤 큰 충격이었다. 미국의 오랜 경제 제재와 고립 속에서 기묘하게 멈춰 선 도시의 낡은 풍경, 단절된 시간이 만든 특유의 바랜 색채와 그 안에서 유독 튀던 원색의 올드카, 유쾌하면서도 친절했던 쿠바 사람들, 마초적인 시가의 텁텁하고 매운 향, 카리브해의 뜨거운 정취가 증류된 럼, 내가 살던 곳과 완전히 반대편에 놓인 명도와 채도. 그런 것들은 모두 황홀한 여행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하게 남은 것은 선택지가 극단적으로 좁아진 세계에서 느낀 이상한 선명함이었다.

 



쿠바의 슈퍼마켓에 가면 살 수 있는 스낵이나 맥주, 음료의 종류가 거의 한두 가지밖에 없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는 그 단순함에 적잖이 놀랐다. 해외의 물품을 다양하게 수입해 판매하는 방식이 아니었고, 대체로 국가가 생산하거나 제한된 경로로 유통되는 물품들뿐이었다. 그래서 늘 마시는 맥주를 반복해서 마시게 되었고, 늘 같은 감자칩을 먹게 되었고, 비슷한 탄산음료를 마시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경험은 자본주의로 가득 찬 나의 삶에서 취향이라는 권한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고를 수 있다. 너무 많은 맥주, 너무 많은 커피, 너무 많은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방식, 너무 많은 선택지 속에서 산다. 그래서 때로는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는다. 쿠바에서는 그 반대였다. 선택지는 좁아졌고, 그 좁아진 선택지 안에서 남은 것들이 이상하게 더 잘 보였다.

 

 

 

가끔 스쳐 지나가는 한국인 여행자들과 술 한잔하며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그들은 대체로 답답해했다. 왜 이런 것밖에 없지, 쿠바 사람들은 어떻게 사냐, 한국이 그립다. 그들의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불편한 것은 분명 불편했다. 하지만 나는 그 단순해진 선택이 결핍을 부르고, 결핍이 오히려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의 소중함을 불러온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나는 한국을 그리워하기보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권한인지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적극적으로 즐기기로 했다. 한국처럼 다양한 음식이 없어도 한국 돈으로 만 원쯤이면 먹을 수 있었던 신선한 랑고스타가 있었다. 휴대폰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은 쿠바의 특성상, 카리브해를 보며 별로 할 일이 없어도 시가를 피워볼 수 있었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거의 한 시간이 걸리는 동안, 또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으니 사람들을 관찰하고, 장소의 흐름을 보고, 가게의 역사를 생각했다. 이상하게 마음의 시력이 높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밤에 할 일이 딱히 없어도 곳곳에서는 살사를 연주하는 밴드들이 있었고, 눈을 돌리면 어딘가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로 내 마음도 흥겨워졌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의 폭은 좁아졌지만, 그 안에서 빛나는 것들은 더 잘 보였다.

 

 

 

쿠바 여행 이후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감각은 조금 더 선명해졌다. 나는 정말 취향이 많은 사람이다. 그 많은 취향의 레이어들은 여기저기서 각각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실제 포토샵의 레이어마다 하는 일이 다르듯이 말이다. 어떤 레이어는 색을 만들고, 어떤 레이어는 깊이를 만들고, 어떤 레이어는 대비를 만들고, 어떤 레이어는 전체의 균형을 잡는다. 팬데믹 이후 긴 이동이 멈춘 뒤에도, 그전까지 약 10년 동안 출국과 입국을 반복하며 만들어진 나만의 취향은 내가 만들고 싶은 브랜드를 디렉팅하는 과정에서 뼈대를 만들고 근육을 붙이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만들고 싶은 이미지, 내가 팔고 싶은 사진, 사진으로 내가 주고 싶은 감동, 내가 뽐내고 싶은 기술력, 내가 원하는 조명 스타일, 내가 원하는 계조감과 공기감.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방향을 만들었다. 선택의 힘은 여행의 순간에서 취향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그 순간들에 나는 대체로 혼자였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볼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었다. 물론 사진 커뮤니티와 여행 카페에서 도움을 받은 적은 많다. 정보는 언제나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은 주관식을 객관식으로 바꾸는 정도의 일이었다. 마지막 선택은 결국 내가 해야 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볼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포기할지, 어디에서 더 머물지, 언제 떠날지.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누구도 선택할 수 없었다. 어쩌면 취향은 그런 순간에 생긴다. 물어볼 사람이 없을 때. 아무도 대신 정답을 말해주지 않을 때. 내 몸의 반응과 내 마음의 끌림만을 믿고 다음 장면으로 걸어가야 할 때.

 

여행은 나에게 무언가를 더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것을 덜어냈다. 익숙한 장소를 덜어냈고, 타인의 판단을 덜어냈고,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 있는 편안함을 덜어냈다. 그렇게 남은 것은 내가 무엇에 반응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감각이었다. 어쩌면 취향은 덧셈보다 뺄셈에 가깝다. 많이 가져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이 사라진 뒤에도 끝까지 남아 있는 반응에서 생긴다.

 

이제 나는 내가 가진 취향의 레이어를 펼칠 시기에 와 있다. 이것은 검색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컨설팅받은 것도 아니다. 수많은 도시와 길, 결핍과 선택, 포기의 순간 속에서 내 몸에 남은 것이다. 내가 만든 사진 조명 기술, 내가 원하는 방향성, 내가 그리고 싶은 콘텐츠, 내가 고객에게 전하고 싶은 감동은 모두 그 레이어 위에서 작동한다. 보통 이런 사람을 사진작가라고만 말하지는 않는다. 디렉터라고 한다. 브랜드 디렉터. 나는 내가 모르는 부분과 서툰 부분에서는 AI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AI에게 선택해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런 것을 해보고 싶은데 더 명료하게 만들어달라고 한다. 내 언어를 시장의 언어로 바꿔달라고 한다. 내 마음이 고객에게 닿으려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지 묻는다. 내가 방향과 중심을 선택하지 못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AI는 그 방향의 디테일을 수정해준다. 내게 AI는 심판이 아니라 조수다. 자기만의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 AI는 그 취향을 더욱 빠르고 선명하게 확장해주는 도구가 된다.

 

나는 앞으로 내 브랜딩이 더 선명한 형태에 이를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막연한 자신감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오래 바라봐왔는지, 무엇을 선택해왔는지, 무엇을 포기해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딩은 책상 앞에서 갑자기 만들어지는 전략이 아니다. 책이나 유튜브로 공부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선택해온 것들의 누적이다. 나는 세계를 여행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반응을 여행했다. 그리고 이제 그 반응들을 하나의 브랜드로 번역하려 한다.

 

 

 


 

 

그 시절, 쿠바에서 찍은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