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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평균 밖에는 사자가 있다

 

 

 

평균 밖에는 사자가 있다

 

 

나는 평균으로 성공하고 싶지 않았다. 이 말은 조금 거칠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이 부끄럽지 않다. 평균은 대개 안전하다. 사람들이 이미 가고 있는 길이고, 누군가 먼저 돈을 벌었다고 말한 길이며, 실패하더라도 크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지 않는 길이다. 웨딩을 하고, 프로필 스튜디오를 열고, 유행하는 촬영 상품을 따라가는 일. 그것들은 모두 나름의 이유를 가진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선택이 필요하고, 때로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 방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평균적인 시선은 우리를 안전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차별화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남들이 이미 걸어간 길은 설명하기 쉽다. 고객도 이해하기 쉽고, 시장도 비교하기 쉽고, 실패했을 때 변명하기도 쉽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길은 빠르게 붐비기 시작한다.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길은 모두가 따라 하기 쉬운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두가 따라 하기 쉬운 길 위에서 사진가는 결국 자기만의 이름이 아니라 가격과 속도와 광고비로 비교되기 시작한다.

 

알고리즘은 우리를 평균으로 데려간다. 그것은 단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의 추천 시스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머릿속에도 알고리즘이 있다. 우리는 계속 계산한다. 무엇이 안전한가. 무엇이 손해가 적은가. 남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가장 무난한 선택은 무엇인가. 그 계산은 생존에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계산이 평균을 향할 때, 우리는 점점 서로를 닮아간다. 그리고 서로를 닮아가는 순간, 시장은 곧 가격과 광고비와 운의 싸움이 된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읽다가 긴팔원숭이 이야기를 보았다. 바나나를 따 먹으려면 사자를 지나가야 한다. 그 순간 원숭이는 계산할 것이다. 저 바나나가 충분히 가치 있는가. 저 사자는 나보다 빠른가. 지금 뛰어가면 살 수 있는가. 아니면 굶더라도 나무 위에 남는 것이 나은가. 생존은 늘 욕망과 공포 사이의 계산이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사진작가도 다르지 않다. 우리 앞에도 바나나가 있고, 사자가 있다.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이 있고, 실패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사자를 지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아주 비겁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알고리즘의 자연스러운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의심해야 한다. 안전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길이 정말 좋은 길인가. 모두가 한 방향으로 걷고 있다면, 그 방향이 정말 정답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모두가 같은 공포를 느끼고, 같은 계산을 하고, 같은 평균값을 선택했기 때문인가. 왜 다들 이 방식으로만 하는가. 반대로 해보면 어떤가. 모두가 한 방향으로 걸을 때, 내가 반대로 걷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질문을 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시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이미 만들어놓은 줄에 서게 된다.

 

획기적인 브랜드들은 평균 바깥에서 탄생한다. 모두가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 모두가 이미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모두가 이미 사용하고 있는 언어 안에서는 대개 비슷한 상품이 태어난다. 더 나은 품질과 더 좋은 서비스는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감각을 바꾸는 브랜드, 사람들이 이전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필요로 만들고, 낯설던 것을 새로운 표준으로 바꾸는 브랜드는 평균의 중심에서 나오기 어렵다. 그것들은 누군가 “왜 꼭 이렇게 해야 하지?”라고 묻는 순간에 시작된다.

 

포드의 자동차도 그랬고, 3M의 포스트잇도 그랬다. 처음에는 대부분이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것은 말보다 느리다고 조롱받았고, 어떤 것은 쉽게 떨어지는 실패한 접착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들은 인류의 표준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평균에 가까웠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평균 바깥에서 새로운 사용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 번 표준이 된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성공의 원천이 되지 않는다. 이제 누군가 포스트잇을 다시 만들어 대성공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이미 평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AI의 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과거에 사진작가라고 하면 응당 떠올리게 되는 세계가 있었다. 스튜디오, 웨딩, 프로필, 가족사진, 행사사진, 광고사진. 물론 그것들은 여전히 필요하고,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업의 상상력이 언제까지 그 익숙한 방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사고와 창의의 패러다임이 새롭게 옮겨가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그 변화를 몸으로 보여주는 사진작가들은 아직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사진을 기존의 화법 안에서만 구사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클래식과 스탠다드의 의미 안에서만 본다면, 나의 브랜딩은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사진업 역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AI가 이미지를 만들고, 글을 쓰고, 콘텐츠의 평균값을 빠르게 생산하는 시대에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안전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알고리즘의 평균을 가장 얌전히 받아들이는 태도일 뿐이다. 모두가 AI에게 비슷한 질문을 하고, 비슷한 답을 얻고, 비슷한 문구와 비슷한 포맷으로 움직인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평균의 대량생산에 가깝다. 도구는 새로워졌지만, 사고가 그대로라면 결과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AI의 시대에 더 중요한 것은 AI를 쓰느냐 쓰지 않느냐가 아니라, 그 도구가 만들어내는 평균에서 얼마나 멀리 튕겨져 나갈 수 있느냐다.

 

그래서 나는 알고리즘의 평균을 의심한다. 사람들이 모두 금요일 저녁에 콘텐츠를 올린다면, 그 시간은 좋은 시간인가. 아니면 모두가 몰려드는 혼잡한 교차로인가. 모두가 AI에게 물어보고 비슷한 답을 얻는다면, 그 답은 전략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평균인가. 사람들이 많이 보는 시간이라는 말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보는 시간에는 만드는 사람들도 많이 몰린다. 그곳에서 눈에 띄려면 더 큰 자극, 더 많은 속도, 더 많은 운이 필요하다. 오히려 사람들이 볼 여유는 있지만 생산자들이 방심하는 시간, 남들이 올리지 않는 시간, 모두가 정답이라고 믿지 않는 시간이 더 좋은 틈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알고리즘을 잘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놓치는 틈을 보는 일이다. 평균은 언제나 우리에게 안전한 방향을 알려준다. 하지만 안전한 방향이 곧 좋은 방향이라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길,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길,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길은 빠르게 붐빈다. 브랜드는 때때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도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이 그것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할 때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브랜드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이 만든 평균조차 의심해야 한다. 한때 새로웠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익숙해진 것은 곧 시장의 언어가 되고, 시장의 언어가 된 것은 다시 경쟁의 언어가 된다. 성공한 문법은 결국 복제된다. 그래서 브랜드는 단 한 번 남들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이 머무르려는 관성을 의심해야 한다. 어제의 혁신은 내일의 평균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묻는 수밖에 없다. 지금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믿고 있는 평균은 어디인가. 그리고 나는 그 반대편에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나는 미국식 스포츠 미디어 촬영을 한국의 성장기 아이들에게 적용해보고 있다. 이 문장만 놓고 보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한국에서 누가 유소년 선수들을 스타처럼 찍어줄 생각을 했는가. 누가 성장하는 아이들의 경기력과 몸짓을 스포츠 포스터의 언어로 번역하려 했는가. KPOP이 인기라는 사실은 모두 안다. 하지만 누가 아직 데뷔하지 않은 아이들, 아직 성장 중인 아이들, 자기 몸과 표정을 훈련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눈을 돌리는가. 스타들만 가질 수 있었던 화보의 문법을 그들의 현장으로 가져가려 하는가.

 

현대무용과 발레도 마찬가지다. 무용을 잘 찍는 스튜디오와 훌륭한 사진가들은 분명 있다. 하지만 춤을 아는 사람이 촬영을 디렉하고, 광고와 패션의 조명 문법을 20분 안에 설치하고, 무용수의 몸 안에 있는 감정의 문법을 빛으로 새겨 넣으려는 시도는 흔하지 않다. 나는 그 지점을 보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시장에 조금 더 좋은 사진으로 들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언어화되지 않은 시장에 사진의 문법을 심으려는 것이다.

 

야외에서 대낮의 태양을 상대로 조명을 세우는 일도 그렇다. 많은 사진가들은 낮을 받아들인다. 하늘이 밝으면 밝은 대로, 배경이 산만하면 산만한 대로, 자연광이 주는 조건 안에서 최선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것도 좋은 사진이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낮의 노출을 내 의도대로 바꿔보고 싶었다. 평범한 운동장과 주차장을 한 명의 선수가 등장하는 무대로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조명을 하나 더하고, 또 하나 더하고, 결국 다섯 개의 순간광을 결합해 하나의 메인라이트처럼 쓰는 실험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과한 장비 놀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문법을 만드는 과정이다. 야외 스포츠 촬영에서, 한낮에도, 연사를 하면서, 선수를 히어로처럼 세우는 문법.

 

이것은 평균적인 선택이 아니다. 평균적인 선택이었다면 나는 이미 검증된 장르를 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촬영을 했을 것이고, 더 쉽게 설명되는 상품을 만들었을 것이고, 누군가 이미 성공한 방식 위에 내 이름을 조금 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안전한 만큼 쉽게 포화된다. 누가 이것으로 돈을 벌었다고 말하는 순간, 모두가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 길은 금방 넓어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곧 좁아진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기 때문이다.

 

유행은 늘 그렇게 생기고, 그렇게 식는다. 처음에는 신선하다. 그다음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그다음에는 가격이 내려가고, 차이는 작아지고, 광고비는 올라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것을 더 이상 자랑의 언어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단단한 땅을 밟고 있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이동식 무대 위에 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명이 꺼지고, 관객이 빠져나가고, 다음 공연이 다른 곳에서 시작되면, 그 무대는 너무 쉽게 해체된다.

 

실패가 두렵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나도 실패가 두렵다.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실패가 곧 나락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실패는 때로 백신에 가깝다. 한 번 몸에 들어와 사람을 아프게 하지만, 그 뒤에는 같은 병에 쉽게 무너지지 않게 만든다.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는 다음번에 가지를 다르게 잡을 것이다. 사자를 마주한 원숭이는 다음번에 바람의 방향과 거리와 도망갈 나무를 더 정확히 볼 것이다. 실패는 좋은 교사가 아니다.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는 아주 깊게 새긴다. 세포에 새긴다.

 

나는 사진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 더 정확히 말할 수 있다. 나는 평균적인 사진으로 평균적인 돈을 벌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본 세계, 내가 만든 문법, 내가 위험을 감수하며 심은 황무지의 모종이 결국 하나의 시장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그것이 브랜드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이미 걷고 있는 길에서 조금 더 빨리 걷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길이라고 불리지 않는 곳에 반복해서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 그 발자국이 쌓이고, 누군가 그 길을 따라오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시장은 생긴다.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말한다.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사람들이 이미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검증된 시간에 올리고, 검증된 문구를 쓰고, 검증된 장르에 들어가라고.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그 말만 듣고 살면, 우리는 영원히 남들이 만든 평균 안에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경쟁하게 된다.

 

알고리즘의 평균 밖으로 역주행해보라.
어쩌면 그곳에는 사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바나나는, 모두가 나눠 먹던 평균의 바나나와는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