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향

사진만 잘 찍으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사진만 잘 찍으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찍는 사람에서, 기획하는 사람으로

 

 

 

내가 사진의 세계에 첫발을 들인 것은 대략 2008년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처음으로 필름카메라를 구입했다. Pentax MX라는 모델이었다. 첫 필름은 아마 코닥 골드였던 것 같다. 지금도 희미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필름실을 열고, 필름을 걸고, 와인더를 감아 넘길 때 손끝에 전해지던 그 작은 장력. 별것 아닌 기계적인 감각이었지만, 그 순간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어쩌면 그때 나는 내 인생의 어떤 문을 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당시의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나는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내가 훗날 사진을 직업으로 삼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진의 세계관이라는 말도 몰랐고, 사진으로 먹고사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몰랐다. 그저 매그넘의 사진가들, 역사에 남은 위대한 사진가들, 블로그에서 유명했던 여행사진가들을 동경하던 시절이었다. 누군가가 남긴 한 장의 사진이 한 사람의 생애와 시대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런 세계가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닿을 수 없는 커다란 세계의 바깥 어디쯤에서, 나는 그저 꼼지락거리며 셔터를 누르는 일개 취미 사진가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났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끔은 쉽게 믿지 못한다. 나는 전업 사진작가가 되었고, 상업 사진을 찍으며 예술로서의 사진과 직업으로서의 사진을 동시에 다루게 되었다. 전시를 열었고, 나의 직업 사진 인생을 담은 에세이와 사진집도 정식으로 출간했다. 업계에서 아주 이름 없는 사진가는 아니게 되었다. 독특한 장르와 기술적인 촬영 방식으로 나를 기억해주는 분들도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삶은 이렇게 예측 불가능하다. 한때 필름을 제대로 감는 법조차 어색했던 사람이 어느새 자신의 삶 전체를 사진 창작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 지금 내 삶의 나침반과 시계는 모두 사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그 시간 위에 수많은 레이어가 쌓였고, 그 레이어들은 전혀 다른 블렌딩을 만들어냈다.

 

내가 처음 사진을 시작하던 시절에 생각했던 사진작가는, 사진을 잘 찍고, 순간을 잘 포착하고,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를 멋지게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이름 있는 포토그래퍼들에게는 어떤 아우라가 있었다. 그들은 자유로우면서도 고독한 사람처럼 보였다. 세상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프레이밍하고, 어떤 순간을 자기 눈으로 발견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 그 시절 내가 생각하던 사진작가는 자유와 고독을 품은 인간적인 내면의 눈을 가진 존재였다. 기록하고, 촬영하고, 이미지를 제작하는 사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아주 급격하게 바뀌었다. 특히 ChatGPT가 등장한 이후, 나는 모든 지형이 뒤집혔다고 느꼈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물론 사진과 이미지의 가치 전복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2010년대만 해도 파리에 가면 렌즈교환식 카메라를 어깨에 멘 여행객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었다. 캐논, 니콘, 소니의 카메라와 묵직한 렌즈는 여행자의 필수품처럼 보였다. 여행을 간다는 것은 곧 좋은 카메라를 들고 간다는 뜻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26년 3월, 다시 방문한 파리에서 렌즈교환식 카메라를 들고 여행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모두 손에 스마트폰만 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사진작가지만 해외여행을 갈 때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지 않는다. 어차피 그 사진은 내 작품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대부분은 기록의 형태로 소비될 것이다. 기록을 조금 더 잘하기 위해 킬로그램 단위의 카메라와 렌즈, 백팩까지 감당할 이유는 점점 줄어들었다. 사진은 스마트폰의 발전 이후 이미 가벼운 소비의 형태로 상당 부분 이동했다. 누구나 찍고, 누구나 저장하고, 누구나 공유한다. 사진은 더 이상 특별한 행위만은 아니게 되었다.

 

그 위에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AI 이후 생성형 이미지는 사진작가들의 밥상머리에 늘 올라오는 반찬처럼 자주 언급된다. 문장 몇 줄과 버튼 한 번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시대다. 그렇다면 사진을 촬영해 돈을 벌던 사진가들이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때는 이런 말도 많았다. 미래의 사진작가들은 모두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AI의 등장과 함께 절멸이 예상되는 직업군 중 하나로 사진가가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의견이 조금 섣부르다고 생각한다.

 

생성형 이미지가 모든 사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생성형 이미지는 때때로 묘한 이질감을 만든다. 너무 매끄럽고, 너무 그럴듯하고, 너무 쉽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이미지가 사람의 시간과 몸을 통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완벽해 보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지 않는 이미지가 있다. 반대로 사람이 만든 이미지는 조금 모자라 보이더라도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결과물의 완성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안에 누군가의 선택, 노동, 실패, 수정, 취향, 의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생성형 이미지에 대한 인식이다. 많은 사람들은 AI 이미지를 일종의 무료 이미지처럼 받아들인다. 쉽게 만들어진 이미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이미지, 사람의 노력이 깊게 들어가지 않은 이미지라는 인식이 형성된다. 그래서 생성형 이미지를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사용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잘못 사용하면 브랜드의 이미지 자체가 가볍게 보일 수 있다. 사람이 생각하고, 노력하고, 선택해서 만든 이미지가 아니라는 느낌은 브랜드의 서사를 얕게 만들 수 있다. 어떤 브랜드가 자신의 얼굴로 AI 이미지를 내세울 때, 그 이미지는 화려할 수는 있어도 깊게 신뢰받지 못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작가가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진작가에게 위기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위기는 분명하다. 특히 단순 기록형 이미지는 스마트폰 이미지와 생성형 이미지의 파도 속에서 점점 더 쉽게 대체될 것이다. 누구나 쉽게 찍을 수 있는 사진, AI가 그럴듯하게 흉내 낼 수 있는 이미지는 앞으로 더욱 빠르게 가치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지금보다 훨씬 더 리얼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때 1차적인 스튜디오 촬영만으로 버티는 사진가들은 큰 파도 앞에 놓이게 된다. 인간의 마음, 인간의 몸, 인간의 시간, 인간의 서사를 담아내지 못하는 이미지는 AI의 파도 앞에서 가볍게 휩쓸려 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사진업을 한다고 해서 사진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진과 이미지 제작을 기본으로 두되, 그것을 다른 업과 결합해야 한다. 사진을 하나의 결과물로만 보지 않고, 다른 장르로 확장되는 재료로 바라봐야 한다. 사진 한 장이 어디에 쓰이는지, 누구의 욕망과 만나는지, 어떤 상품이 되는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지, 어떤 브랜드의 기억으로 남는지까지 생각해야 한다. AI 시대 이후의 사진작가는 단순히 찍는 사람으로 남아서는 부족하다. 이제 사진작가는 기획하고, 설계하고, 완성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KPOP 아이돌 지망생들의 데뷔 패키지는 그런 방향의 작은 선례가 될 수 있다. 나는 아이돌 데뷔를 꿈꾸며 연습하는 아이들을 촬영한다. 하지만 그들을 평범한 스튜디오 프로필처럼 찍지 않는다. 실제 프로 가수들을 촬영하는 것 같은 조명과 연출을 더해, 아이들이 데뷔한 아이돌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촬영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이미지를 매거진, 포토카드, CD 앨범, 도시 광고판 같은 형식 안에 넣는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잠시 다른 표정을 짓는다. 연습실에서 안무를 맞추던 아이가 조명 앞에 서고, 모니터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눈빛이 달라진다. 아직 데뷔하지 않았고, 아직 무대에 선 것도 아니지만, 이미지 속의 자신은 이미 어떤 세계에 도착해 있다. 포토카드 안에 들어간 자신의 얼굴, 앨범 재킷처럼 완성된 이미지, 도시의 광고판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처음 마주할 때 아이들은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본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단순히 예쁘게 나온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매일 말하던 꿈이 잠시 현실의 형태를 얻는 장면을 본다.

 

그 순간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예고편이 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가 먼저 도착한 이미지가 된다. 아이는 아직 데뷔하지 않았지만, 이미지는 미래의 무대를 미리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미래의 자신을 미리 만나는 경험이다. 아이와 학부모는 그 이미지를 보며 언젠가 이루고 싶은 장면을 더 선명하게 상상하게 된다. 그 순간을 손에 잡고 싶어서 더 노력하게 될 수도 있다. 사진이 한 사람의 꿈과 만나면, 그것은 더 이상 결과물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동기부여가 되고, 사건이 되고, 상품이 되고, 브랜드가 된다.

 

나는 이것이 앞으로 사진이 확장될 수 있는 중요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예전 방식의 사진 촬영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진을 촬영하고, 그것을 새로운 장르와 결합하여 미래로 확장시키는 일이다. 그 안에는 상품 기획, 마케팅, 브랜딩, 브랜드의 서사, 고객의 감정, 아이의 꿈, 댄스 디렉터의 기획, 사진가의 미학적 표현이 모두 포함된다. 사진과 KPOP 아이돌 문화의 결합, 학부모의 정서, 아이의 미래에 대한 욕망, 그리고 사진가의 이미지 설계가 하나의 상품 안에서 만나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말 사진만 잘 찍으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사진작가의 가치가 꽤 높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렌즈교환식 카메라가 보편화되고, 미러리스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사진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투잡을 넘어 전업 사진작가로 진입하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시장은 수퍼 레드오션이 되었다. 사진으로 돈 벌기 어렵다, 사진업은 힘들다, 라고 말하면서도 취미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여전히 이 직업으로 들어오고 싶어 한다. 먹을 것이 많지 않은 시장인데도, 그 안에는 여전히 낭만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은 자신만의 무언가로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상상한다.

 

그러나 취미로 사진을 시작한 지 18년, 상업 사진을 11년 넘게 해오며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레드오션 속에서 남들과 똑같이 경쟁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자신만의 블루오션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블루오션은 사진만 잘 찍는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정말 많다. 과거 사진작가의 중요한 덕목이었던 기술적 능력, 감성적 시선, 좋은 색감, 좋은 보정, 좋은 구도는 이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갖추고 있다. 그 실력만으로 경쟁하는 것은 점점 의미가 줄어든다.

 

중요한 것은 사진을 어떤 다른 장르와 결합할 것인지다. 사진에 어떤 감각을 입힐 것인지다. 사진을 사진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이미지로 발전시키는 방식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지는 사진보다 넓다. 사진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태어나지만, 이미지는 그 이후에 기획되고, 편집되고, 배치되고, 유통되고, 사람들의 감정 속에서 완성된다. 사진작가는 이제 이 전체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팬데믹 전까지만 해도 포토샵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진작가였다. 라이트룸은 익숙했지만, 포토샵의 세계에서는 물 위의 맥주병 수준이었다. 포토샵을 제대로 공부하게 된 계기는 팬데믹과 사진 스튜디오 실패였다. 직업 사진가를 자칭하면서도 내 필수 도구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그 부끄러움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나는 반성과 함께 포토샵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패널이 뭔지, 옵션 바가 뭔지, 레이어는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포토샵의 구조를 하나씩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사진 이후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레이어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생각을 쌓는 방식이었고, 마스크는 이미지를 지우는 도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조절하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연습은 조금씩 쌓였고, 지금은 꽤 많은 도구와 방식을 내 캔버스 위에서 원하는 대로 꺼내 쓸 수 있게 되었다.

 

포토샵은 나에게 작업공방이다. 때로는 집 같기도 하다. 이 안에서 모든 사진의 이미지화가 시작된다. 내가 원하는 마케팅과 브랜딩, 창작 활동과 광고 행위가 모두 포토샵 안에서 만들어진다. 포토샵은 단순한 보정툴이 아니다. 나에게 포토샵은 사진을 다른 장르와 결합시키는 작업대다. 사진을 상품으로 바꾸고, 세계관으로 확장하고, 브랜드의 언어로 번역하는 공간이다. AI 시대 이후 사진의 가치가 낮아진 세상에서 사진과 타 장르의 결합을 상상하고 현실화하며, 나만의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도구가 바로 포토샵이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포토샵은 굳이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의견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생성형 이미지로 광고나 상업 페이지를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것은 때때로 물 떠놓고 빌면서 렌더링을 기다리는 일에 가깝다. 자신이 원하는 폰트, 배치, 색, 구성은 모두 AI의 취향에 따라 생성된다. 프롬프트를 수없이 고쳐 쓰고, 그중에서 어쩌다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야 한다. 그 방식이 재미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자신만의 일관된 상업적 결과물을 만들기는 어렵다. 톤 앤 매너는 그때마다 흔들리고, 브랜드의 결은 쉽게 분절된다.

 

브랜더로서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고자 한다면 자기만의 폰트, 자기만의 방식, 자기만의 색감, 자기만의 배치 감각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작업물은 하나의 세계로 묶이지 못한다. 그래서 나 역시 처음에는 생성형 이미지를 써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 기다림과 우연성에 지쳐 다시 포토샵을 열었다. 새 파일을 만들고,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배치하고, 내가 원하는 타이포를 얹기 시작했다. 누끼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직접 딴다. 원하는 픽셀만큼만 내가 스스로 재단한다. 그 과정은 느리고 번거롭다. 하지만 그 번거로움 안에 나의 취향과 판단이 들어간다. 바로 그 인간적인 노력이 지금의 상품이 되었다.

 

AI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포토샵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AI는 재료를 만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아 있다. 어디까지 남기고, 어디까지 지울 것인지. 어디까지 흐리게 하고, 어디까지 선명하게 할 것인지. 어떤 색은 죽이고, 어떤 빛은 살릴 것인지. 어느 정도의 불투명도가 현실감을 만들고, 어느 정도의 질감이 이미지를 가볍지 않게 만드는지. 이 미세한 판단은 결국 한 사람의 눈과 취향, 경험과 세계관에서 나온다. 포토샵은 AI 시대에 사라지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이미지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조종석에 가깝다.

 

과거의 사진작가들은 그 시대만의 방식으로 사진을 프레이밍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그 시대의 사진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었다. 나 역시 그 세계를 동경하며 사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진작가들은 여전히 과거의 관성으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좋은 사진을 찍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좋은 장비와 좋은 보정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들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 사진작가는 통합형 창작자가 되어야 한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에서, 이미지를 기획하고 완성하는 사람으로 이동해야 한다. 사진을 촬영하는 능력은 기본이고, 그 사진이 어떤 시장과 만나는지, 어떤 고객의 감정과 결합하는지, 어떤 브랜드의 서사로 확장되는지까지 생각해야 한다. 사진작가는 이미지 기반의 기획자이며, 동시에 브랜드를 설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진작가의 이름 석 자, 스튜디오의 이름, 작업 방식, 결과물의 톤, 콘텐츠의 문장, 고객이 느끼는 감정은 모두 브랜드의 일부가 된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이 지점을 간과한다. 예전에는 사진작가의 이름이 그저 사진작가의 이름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의 이름이 어떤 세계관을 떠올리게 만들지 못한다면, 수많은 기록작가들 사이에서 쉽게 사라질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이름이 단순한 사진 결과물을 넘어 하나의 감각, 하나의 장르, 하나의 기대감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면 그것은 좋은 브랜딩이 된다.

 

사진만으로 말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이제 사진은 더 넓은 세계로 이동해야 한다. 사진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혼자 서 있지 않는다. 사진은 브랜딩의 재료가 되고, 상품의 설계도가 되고, 고객의 감정을 움직이는 장치가 되고, 한 사람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무대가 된다. AI 시대 이후의 사진작가는 바로 이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찍는 사람에서, 기획하고 완성하는 사람으로. 기록하는 사람에서, 세계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나는 그 방향으로 계속 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사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배웠다. 사진을 둘러싼 감정, 서사, 기획, 상품, 브랜드, 사람들의 욕망. 결국 사진작가는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을 넘어, 사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