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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방향

경량문명 시대의 상업사진작가

 

 

모든 것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필름에서 디지털카메라로의 대전환, 구조를 작고 가볍게 만든 미러리스 카메라의 등장, 스마트폰 카메라의 시장 잠식, 그리고 인스타그램 시대와 함께 쏟아지기 시작한 수많은 디지털 이미지들.

 

거기에 2022년을 전후해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제 우리는 몇 줄의 프롬프트만으로도 이미지를 즉각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이 변화의 대부분을 관통하며 사진을 찍어온 한 명의 사진작가다.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 바라보았던 사진과 사진 시장에서부터, 지금 AI라는 거대한 파도 한가운데에서 바라보는 사진업까지. 그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꽤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최근 나는 지금의 시대를 설명하는 ‘경량문명’이라는 표현에 관심을 두고 있다.

 

과거에는 큰 기업과 큰 조직, 대규모 프로젝트가 세상을 움직였다. 크고 안정적인 회사에 입사해 한 명의 사원이 되는 것이 부모님의 자랑이던 시대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팬데믹을 거치고 AI가 등장하면서 직업과 사회, 경제를 지탱해온 기존의 질서는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사진업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의 사진업은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2000년대의 사진 프로덕션이나 웨딩 스튜디오, 프로필 스튜디오를 떠올려본다.

 

강남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을 통으로 사용하는 스튜디오.

여러 개의 촬영 공간과 야외 촬영장.

권위 있어 보이는 대표 사진작가.

여러 명의 조수와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가득한 공간.

건물과 땅값만 생각해도 엄청날 것 같은 압도적인 규모.

 

그런 곳에 사진 작업을 의뢰하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비용도 어쩌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규모와 조직이 곧 전문성이었고, 때로는 그 규모 자체가 실력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형태의 스튜디오가 이미 상당 부분 해체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흐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각자가 자기 갈 길을 가게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뜻이다.

 

큰 스튜디오 안에 모든 사람과 모든 기능을 모아둘 이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촬영장이 필요하면 빌리면 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필요하면 프로젝트에 맞춰 부르면 된다.

 

스타일리스트도 마찬가지다.

 

조명과 촬영 장비는 과거보다 훨씬 작고 강력해졌고, 선택지도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스튜디오를 만든다고 해도 반드시 대형으로 시작할 이유가 없다.

 

규모가 실력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특정 사진작가의 이름값도 과거와 같은 무게를 가지기 어려워졌다.

 

인스타그램 시대 이후 모든 사진작가는 사실상 무한 경쟁 상태에 놓였다.

 

어떤 사진을 찍고 싶다면 검색 몇 번만으로 비슷한 결과물을 만드는 사진작가 수십 명을 찾을 수 있다.

 

이제 소비자는 사진작가의 이름만 보고 촬영을 선택하지 않는다.

 

사진을 보고, 영상을 보고, 가격을 보고, 후기를 보고,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까지 본다.

 

AI를 이용해 구매 결정을 돕는 시대까지 왔다.

 

정보가 넘치는 소비자는 이제 규모나 이름보다 자신에게 어떤 경험과 결과가 돌아오는지를 살핀다.

 


 

사진가에게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사진가는 촬영만 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촬영, 조명, 보정, 연출, 고객응대, 디자인, 마케팅을 여러 사람이 나눠 맡았다면, 지금은 한 명의 사진작가가 그 상당 부분을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인건비의 상승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기술의 발전이다.

 

과거 여러 명이 나눠서 해야 했던 일들이 점점 한 사람의 손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경량화는 단순히 사람이 줄고 규모가 작아지는 현상을 뜻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반드시 소유해야 했던 것들을 이제는 필요할 때 가져다 쓸 수 있다.

 

공간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장비도 그렇다.

 

나는 실제 촬영 현장에서도 이런 경량화의 장점을 자주 체감한다.

 

작은 팀은 움직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새로운 촬영 아이디어가 생기면 바로 테스트할 수 있고, 현장에서 반응이 좋았던 방식은 다음 촬영에 곧바로 반영할 수 있다.

 

반대로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버리고 다른 방식을 시도하면 된다.

 

기획과 실행 사이의 거리가 매우 짧다.

 

누군가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여러 단계를 거쳐 결정을 전달할 필요도 없다.

 

생각한 사람이 곧 실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속도가 작은 조직이 가진 가장 강력한 경쟁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진작가 개인의 역량이 남는다.

 

어도비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은 이제 기본에 가까워졌다.

 

사진을 촬영하고 보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결과물을 어떤 방식으로 확장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디자인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고객이 무엇에 돈을 지불하는지 연구해야 한다.

 

SNS도 알아야 한다.

 

마케팅과 광고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자신의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지, 어떤 콘텐츠가 사람을 멈춰 세우는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계정에 지속적인 관심을 만들어낼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한 명의 사진작가는 거대한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은 채 자신만의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나는 앞으로 사진 산업에서 무엇을 찍었는가보다 무엇을 만들어냈는가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찍는 행위 자체는 너무 쉬워졌다.

 

스마트폰으로 버튼만 누르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AI는 몇 줄의 문장만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즉각 생성한다.

 

이런 환경에서 셔터를 누르는 행위 자체만으로 가치를 만들어내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무엇을 찍었는가만큼, 그것을 무엇으로 완성했는지가 중요해진다.

 

한 장의 사진은 셔터를 누르는 찰나에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업 사진이라는 사업은 그렇지 않다.

 

촬영 전의 기획과 준비, 촬영 현장의 연출, 촬영 후의 보정과 편집, 결과물을 보여주는 방식, 마케팅과 고객 경험까지 수많은 과정이 하나의 결과를 만든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그 긴 과정 속의 아주 짧은 한 순간일 뿐이다.

 


 

고객도 분명히 똑똑해졌다.

 

사진작가라면 고객이 오지 않는 이유를 단순히 운이나 알고리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고객에게는 이제 당신을 선택해야 할 이유만큼이나 선택하지 않을 이유도 많다.

 

사진을 모자람 없이 잘 찍는데도 고객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이제는 사진 외의 것들을 점검해야 한다.

 

상품은 매력적인가.

 

가격에는 이유가 있는가.

 

브랜드에는 색깔이 있는가.

 

고객에게 전달되는 경험은 분명한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제대로 알려지고 있는가.

 

그 질문을 하지 않은 채 운이나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의 선택만 기다린다면 사업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기술도 빠르게 평준화되고 있다.

 

카메라는 과거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갖게 되었고, 사진을 배우기 위한 정보는 넘쳐난다.

 

보정 프로그램에는 AI가 들어왔고, 사용법을 알려주는 강의와 콘텐츠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기술적으로 평균 이상에 올라가는 것만으로 다른 사진작가와 크게 차별화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사진작가는 무엇으로 생존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경량문명의 문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된다.

 

1인이어도 좋고, 몇 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팀이어도 좋다.

 

먼저 사진가로서 평균 이상의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

그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사진과 연결된 여러 기술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멈춰서는 안 된다.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가.

어떤 고객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

어떤 가격을 받을 것인가.

어떤 색깔을 브랜드에 입힐 것인가.

어떤 언어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것인가.

 

결국 사진업 전체를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술의 자리에 결국 취향과 세계관, 철학과 사람이 남는다.

 

그것이 다른 사진작가와 나를 구분한다.

 

그리고 고객이 촬영을 예약하려는 순간,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다.

 

큰 조직은 느리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하나 새롭게 만들려고 해도 회의를 해야 하고, 검토를 해야 하고, 결재를 받아야 한다.

 

디자인을 맡기고 수정하고 다시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작은 팀은 오늘 생각하고 내일 만들 수 있다.

 

실패하면 다시 만들면 된다.

 

고객이 반응하면 바로 확장하면 된다.

 

실제로 작은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이런 속도의 차이는 아주 크게 느껴진다.

 

아침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오후에 시험해볼 수도 있고, 이번 촬영에서 발견한 문제를 다음 촬영부터 바로 고칠 수도 있다.

 

시장의 반응과 실행 사이에 기다림이 거의 없다.

 

작은 조직은 완벽한 계획을 세운 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완성해갈 수 있다.

 

크면 느리다.

무거우면 움직이는 데 돈이 든다.

움직이는 데 돈이 많이 들면 과감하게 실험하기 어렵다.

실험하지 못하면 변화가 느려진다.

그리고 느리면 고객을 놓친다.

 

나는 앞으로 사진업에서 흥미로운 역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작은 스튜디오가 큰 스튜디오를 닮으려고 했다.

 

더 큰 공간을 갖고 싶어 했고, 더 많은 직원을 두고 싶어 했고, 더 큰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했다.

 

앞으로는 반대의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큰 조직이 작은 조직의 속도와 경량화를 부러워하게 되는 것이다.

 


 

상업 사진가는 더 이상 셔터만 누르는 사람이 아니다.

 

작은 제작사이자 디렉터이고, 브랜드이자 미디어다.

 

때로는 자신의 결과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하는 기획자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진가는 더 많은 일을 직접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경량화를 축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경량화는 통제권을 되찾는 일이다.

 

내가 무엇을 만들지 결정한다.

얼마에 팔지 결정한다.

어떻게 보여줄지 결정한다.

누구와 일할지 결정한다.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대신, 내가 하나의 작은 시스템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상업 사진업에서 이런 사람들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큰 스튜디오가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온도가 높은 곳.

 

작은 팀인데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곳.

 

수많은 사진가 가운데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사람.

 

고객을 넘어 팬을 만들어내는 사진 브랜드.

 

가볍지만 약하지 않은 사람.

 

자기 세계관으로 꽉 찬 사람.

 

혼자서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세상에서 도드라지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통해 고객에게 단순한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사진을 둘러싼 경험과 이야기를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

 

나는 이것이 경량문명 시대의 상업 사진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