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agazine: 방향

AI는 당신이 가진 세계를 증폭한다

이걸 취미라고 할 수 있을까.

 

요즘 내게 취미가 하나 생겼다. 첫 번째는 AI와 함께하는 영어 공부다.

 

아주 오래전 공교육에서 멈춰버린 영어 공부를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GPT에게 내가 실제로 사용할 법한 문장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GPT는 교과서적인 영어보다 실제 영어권 사람들이 사용하는 표현에 가까운 문장들을 만들어줬고, 나는 그것을 하루에 몇 문장씩 암송했다.

 

거의 매일 반복하다 보니 몇 달 동안 벌써 수백 개의 문장이 내 안에 쌓인 것 같다.

 

처음에는 사진작가인 나를 소개하는 영어부터 시작했다.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 사용하는 말, 내가 하는 일과 가치관을 설명하는 말, 촬영하면서 디렉션을 줄 때 사용할 말들을 배웠다.

 

조금씩 범위를 넓혔다.

 

부산에 온 외국인에게 맛집이나 관광지를 소개하는 영어를 익혔고, 실제로 그들과 삼겹살집이나 횟집에 갔을 때 사용할 법한 자연스러운 문장을 외웠다.

 

아예 Jane이라는 가상의 여행자도 만들었다.

 

Jane이 한국에 여행을 왔다고 가정하고 함께 부산을 돌아다니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GPT에게 물었다. 적게는 하루 여섯 문장, 많게는 십여 문장을 계속 중얼거리며 외웠다.

 

내가 언젠가 가고 싶은 미국 문화 탐방 여행도 영어 공부의 재료가 되었다. 링컨 센터나 케네디 센터에서 공연을 보고, 식당에 가고, 미술관을 다니고, 재즈 클럽에 들어갔을 때 사용할 법한 영어를 미리 익혔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는 영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필요한 순간에 말문이 막히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시작한 AI와 함께하는 영어 익힘은 어느새 거의 생활이 되었다.

 

당장 영어를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활동이 1년, 3년, 5년 계속 쌓인다면 내 영어는 어떻게 변할까.

 

언젠가는 영어권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내 생각과 가치관을 나누는 수준까지 갈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확인해보는 일 자체가 꽤 즐겁다.

 

요즘 나는 헬스장의 천국의 계단을 30분 동안 타면서 영어 문장을 외운다.

 

이 시간은 정말 좋다.

 

운동을 하는 30분과 영어 공부를 하는 30분, 두 개의 레이어가 절묘하게 겹친다. 스텝을 계속 밟으며 리듬에 맞춰 영어 문장을 중얼거린다. 생각보다 잘 외워진다.

 

웨이트 운동을 할 때는 그동안 외웠던 영어를 복습한다. 휴대폰에 문장을 띄워놓고 몇 번 읽은 뒤 덤벨 운동을 하고, 다시 문장을 본다.

이렇게 반복하면 기억에 꽤 오래 남는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했다.

 

러닝을 하는 한 시간 동안 영어 공부까지 할 수 있다면 시간이 훨씬 빠르게 지나가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팝송이었다.

 

미리 팝송의 가사를 공부한 뒤 러닝하면서 반복해서 따라 부르는 것이다. 군대에서 구보하며 불렀던 군가의 가사를 아직도 기억한다는 사실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던 클래식 팝과 록의 레전드들을 하나씩 호출했다.

 

첫 곡은 Bruce Springsteen의 〈Dancing in the Dark〉였다.

 

가사를 GPT에게 보여주고 해석과 주요 표현을 물었다. 단순히 문장의 뜻만 묻지 않았다. 어떤 표현이 실제 영어에서 자주 쓰이는지, 어떤 것은 구어체인지, 어떤 문장은 기억해두면 좋은지까지 구분해서 공부했다.

 

집에서 몇 번 따라 부르며 익혔다.

 

두 번째 곡은 Michael Jackson의 〈Man in the Mirror〉였다.

 

실생활에서 그대로 사용할 표현이 아주 많은 노래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사가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이 노래를 수없이 들어왔지만, 가사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뜻을 알고 다시 들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부터 Michael Jackson은 나의 리스닝과 발음 선생님이 되었다.

 

해변 공원을 한 시간쯤 달리며 미리 공부해둔 곡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리듬과 멜로디만 들렸겠지만, 이제는 그 안에서 영어의 뜻까지 함께 들렸다.

 

반복해서 듣다 보면 그 말들도 조금씩 내 것이 된다.

 

음악이 하나의 언어가 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러닝용 팝송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라드와 다른 장르의 음악들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의 팝 영웅 중 한 명인 Billy Joel까지 왔다.

 

Billy Joel의 가사는 비교적 일상적인 언어와 가깝다. 어려운 단어를 잔뜩 사용하는 대신 사람들의 삶과 대화와 기억을 노래 안으로 그대로 가져온다.

 

그의 곡 중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Scenes from an Italian Restaurant〉의 가사를 GPT와 함께 읽었다.

 

그리고 가사의 의미를 알고 다시 이 곡을 들으면서 영미권 가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시적인 깊이와 입체감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나는 실용음악과 출신이라 학생 때 이런 식의 음악 교육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영어를 지금보다 훨씬 덜 이해했던 그 시절과 지금은 전혀 다르게 들렸다.


Scenes From an Italian Restaurant - Billy Joel (from live Shea Stadium)

 

 

 

 

 

곡은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시작한다.

 

누군가와 만나 와인을 주문하고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함께 알고 있던 Brenda와 Eddie라는 옛 친구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곡 역시 처음의 잔잔한 발라드에서 점차 록앤롤로 움직이고, 재즈와 블루스의 요소까지 섞이면서 갑자기 활기를 얻는다.

 

Brenda와 Eddie는 한때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을 만큼 멋지고 유명한 커플이었다. 둘은 결혼했고, 주변 사람들은 그 결혼을 걱정했다.

 

둘이 원하는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너무 많았다.

 

결국 돈과 생활의 문제가 두 사람 사이에 들어왔고, 싸움이 시작되고, 이혼하고, 각자의 길을 간다.

 

중요한 것은 Joel이 이 이야기를 특별히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춘은 덧없다고 말하지도 않고, 사랑은 변한다고 훈계하지도 않는다. 결혼은 현실이라고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곡은 다시 처음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돌아온다.

 

언제든 원하는 대로 레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 혹은 로제 와인을 마셔도 좋다는 듯한 평범한 장면으로 되돌아간다.

 

나는 이 곡에서 이런 주제를 읽었다.

 

젊은 시절에는 영원할 것 같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한때의 장면에 불과하다.

 

그런데 조금 더 듣다 보니 이 곡은 단순한 청춘 회상에 머물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목은 〈Scene〉이 아니라 〈Scenes〉다.

 

Brenda와 Eddie의 청춘만 장면인 것이 아니다.

 

지금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앉아서 그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두 사람 역시 시간 안에 잠시 놓여 있는 또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졌다.

 

액자 안에 또 하나의 액자가 들어 있는 구조다.

 

식당에서 과거를 이야기하는 두 사람은 Brenda와 Eddie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정작 그들 자신 역시 언젠가는 누군가의 기억 속 한 장면이 된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살아갈 때 언제나 현재가 본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거의 모든 순간은 하나의 ‘장면’이 된다.

 

Joel은 이것을 가사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직접적인 한 문장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곡과 이야기의 구조로 시간을 노래한다.

 

〈Scenes from an Italian Restaurant〉는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펼쳐보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그런데 그 사진첩을 보고 있는 사람들조차 다시 한 장의 사진 안에 들어간다.

 

나는 이 곡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냥 듣기만 했다면 이런 예술적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가사는 감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발생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든다.

 

AI를 통해 작품의 바깥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곡의 실제 공간적 모티브가 된 곳으로 알려진 레스토랑은 맨해튼 카네기홀 맞은편에 있었던 Fontana di Trevi다.

 

Billy Joel은 1976년 카네기홀에서 공연하던 시기에 프로듀서 Phil Ramone과 이곳에서 저녁을 먹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Phil Ramone은 Billy Joel의 대표적인 명반 중 하나인 《The Stranger》를 프로듀싱했고, 바로 그 앨범에 〈Scenes from an Italian Restaurant〉가 수록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곡을 듣는 장면 자체가 달라졌다.

 

1970년대 뉴욕.

카네기홀 건너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공연을 마친 음악가들.

테이블 위의 와인.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들.

 

AI가 없었다면 나는 이 곡을 평생 좋아하면서도 이런 배경까지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는 외국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대부분 멜로디와 리듬, 분위기를 소비하는 일이었다. 세션맨이 누구인지, 어떤 시대에 녹음되었는지, 작곡자가 실제로 어떤 장소를 떠올렸는지, 가사의 한 문장이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 쓰였는지까지 파고드는 일은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제는 한 곡을 반복해서 듣다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서 다시 새로운 질문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음악을 듣는 행위 자체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확장된다.

 

작품 감상의 방식이 AI 이후에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Billy Joel의 가사가 얼마나 훌륭한지, 혹은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만약 내 안에 음악에 대한 경험과 문학, 예술에 대한 관심, 여행과 미식에 대한 취향, 사진이라는 직업적 경험이 전혀 없었다면 나는 AI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까.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나의 에세이 《빛과 디렉션》에서도 언급했지만,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방황했던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좋아서 여행하고, 좋아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미술관을 다니고, 맛있는 것을 찾아다녔다.

 

그때는 그 경험들이 어디에 쓰일지 몰랐다.

 

어떤 방향으로 수렴할지도 몰랐다.

 

그냥 좋아서 했던 일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시간 동안 내 안에 쌓인 수많은 재료들이 AI라는 도구를 만나며 증폭되고 있다.

 

Billy Joel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질문을 시작할 수 있고, Springsteen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사를 들여다볼 수 있고, 실용음악을 공부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곡의 구조를 듣고, 문학을 읽어왔기 때문에 가사의 서사와 은유를 발견하고, 사진을 해왔기 때문에 그 장면을 이미지로 다시 떠올릴 수 있다.

 

하나의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만든다.

 

서로 다른 경험들이 연결되면서 사고의 범위가 넓어진다.

 

AI는 그 과정을 엄청난 속도로 가속한다.

 

그래서 나는 AI 시대에는 ‘어떻게 질문하는가’보다 한 단계 앞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질문할 수 있는가.

 

이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10만큼의 질문 재료를 가진 사람은 대체로 그 10의 세계 안에서 질문하게 된다.

 

반대로 100, 1,000의 경험과 관심과 교양을 가진 사람은 서로 다른 재료들을 연결하면서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다.

 

AI는 그 사람의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엄청난 크기로 증폭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지식 격차는 단순히 정보를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차이만으로 나뉘지 않을 것 같다.

 

경험과 교양과 관심사가 축적된 사람, 그리고 질문할 원재료가 충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예전에는 지식이 많은 사람도 새로운 정보를 찾기 위해 책을 뒤지고, 논문을 찾고, 전문가를 만나고, 수많은 검색 결과를 헤매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가진 지식과 관심을 출발점으로 삼아 순식간에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

 

이미 100을 가진 사람이 1,000으로 가는 속도와, 10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움직이는 속도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AI는 지식의 격차를 없애기보다, 이미 가진 세계의 크기를 증폭시키는 장치다.

 

나는 앞으로도 영어권 팝 가사를 한 곡씩 천천히 공부할 생각이다.

 

이것은 내게 시집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노래를 불러주는 살아 있는 시집이다.

 

그리고 사진작가에게 중요한 훈련 중 하나가 이미지 심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 활동은 내 직업에도 분명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영어 공부와 음악 감상, 문학적 해석과 이미지 심상 훈련이 또 하나의 레이어로 겹친다.

 

처음에는 단순히 영어 공부를 하려고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음악 감상이 되고, 음악 감상이 문학 읽기가 되고, 문학 읽기가 사진을 위한 심상 훈련으로 돌아온다.

 

AI를 사용하면서 흥미로운 것은 이런 서로 다른 영역들이 연결되는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다는 점이다.

 

책을 읽어본 경험.

재즈를 들어본 경험.

미술관을 다녀본 경험.

영화를 오래 봐온 경험.

어떤 뮤지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

여행했던 도시.

직업에서 쌓은 전문성.

수십 년 동안 만들어진 취향.

 

이 모든 것이 이제 AI에게 던질 프롬프트의 재료가 된다.

 

그리고 단순한 프롬프트의 재료에 머물지 않는다.

 

서로 다른 경험들이 연결되면서 더 복잡한 사고와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낸다.

 

교양은 이제 단순히 ‘알고 있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AI 시대의 교양은 더 먼 지식의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탐색의 좌표가 된다.

 

 


 

 

 

한 가지 비유를 들어보자.

 

나에게 ‘불’이라는 도구를 주고 Gordon Ramsay에게 똑같은 불을 준다고 해보자.

 

나도 불을 이용해 고기를 굽고, 계란을 부치고, 음식을 만들 정도는 된다.

 

하지만 Gordon Ramsay에게 불은 단순히 음식을 뜨겁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다.

 

재료의 수분과 단백질의 변화, 음식의 온도와 갈변, 향과 질감을 조절하는 정교한 도구가 된다.

 

똑같은 불이다.

 

하지만 그 불로 열 수 있는 세계의 크기는 전혀 다르다.

 

AI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같은 도구에 접근한다고 해서 그 도구의 가치가 모두에게 같은 것은 아니다.

 

도구의 평등은 결과의 평등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숙련의 차이를 증폭한다.

 

AI를 단순한 검색기나 문장 생성기로 사용하는 사람과,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취향을 연결해 더 큰 질문을 만들어내는 증폭기로 사용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꽤 큰 낙차를 만들지도 모른다.

 

AI 시대가 올 줄 알고 그렇게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저 좋아서 다녔고, 좋아서 읽었고, 좋아서 듣고, 맛보고, 노래하고, 더 알고 싶어 했을 뿐이다.

 

그때는 그 시간들이 모두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모든 시간이 지금 AI에게 던질 질문의 원재료가 되어 있었다.

 

《빛과 디렉션》에서도 썼듯이,

열심히 다니고,
보고,
맛보고,
읽고,
노래하고,
더 알고자 했던 지난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