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평양냉면을 둘러싼 논쟁이 꽤 뜨거웠던 적이 있다.
지금도 평양냉면은 인기 있는 음식이지만, 예전처럼 자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는 않는 것 같다.
논쟁의 요지는 단순했다.
평양냉면을 처음 먹어본 사람들 가운데는 특유의 향이 불편하고, 맛은 지나치게 밍밍해서 도대체 왜 이것을 맛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술 더 떠서, 평양냉면 한 그릇에서 절제미와 전통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거의 숭배하듯 이야기하는 미식가들의 태도까지 함께 비판하기도 했다.
반대편에는 평양냉면 애호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 그릇 안에 담긴 절제미를 이야기한다.
낮은 농도와 밀도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재료 본연의 맛을 이야기하고, 오랫동안 이어진 음식의 전통과 가치를 말한다.
그 맛을 경험하기 위해 평균적인 점심값을 훨씬 넘는 돈을 내고, 긴 줄을 서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냉면 자체보다 그 냉면을 둘러싼 사람들의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평양냉면은 먹을 가치가 없는 음식이고,
누군가에게는 인생 음식이다.
같은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사람의 마음이 강하게 끌리기도 하고, 완전히 멀어지기도 한다.
이를 호오(好惡)라고 한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취향과 선호의 방향이다.
우리는 탕수육에 소스를 붓느냐 찍느냐 하는 작은 취향 하나만으로도 식탁을 뜨겁게 만들 때가 있다.
나는 여기서 꽤 중요한 감각 하나를 발견한다.
호오의 감각이다.

혹시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이 있는가.
돈을 주고 사 먹으면 그만인 막걸리를 굳이 시간과 노동을 들여 직접 만드는 사람.
러닝에 빠져 여러 브랜드의 러닝화를 신어보고, 각각의 장단점을 외우다시피 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추천하는 사람.
전자기타에 빠져 브랜드마다 다른 소리를 구별하고, 이펙터의 구성과 앰프와의 상성까지 공부하는 사람.
이 사람들은 효율이라는 잣대로 바라보면 꽤 이상한 행동을 한다.
돈을 쓴다.
시간을 쓴다.
공부한다.
비교한다.
기다린다.
실패한다.
그리고 또 한다.
왜 그럴까.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면 놀랄 만큼 비효율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비효율을 별로 아까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수고까지 좋아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자신의 마음으로 무언가를 깊이 좋아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를 팔아야 할 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 수 있을까.
세상 어디에나 있는 적당하고 대체 가능한 물건을 만들면서,
특별한 막걸리가 시장에서 만나는 뜨거운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뒤에서 혀를 끌끌 차면서,
왜 그들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그렇게까지 들여가며 그 선택을 하는지 생각해본 적은 있는가.
그리고 내가 만드는 상품과 브랜드에는
누군가가 그렇게까지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이유가 있는가.
여기서 ‘비합리적’이라는 말을 ‘팬덤’으로 바꾸면 이야기는 재미있어진다.
멀리서 찾아온다.
줄을 선다.
조금 더 비싼 돈을 낸다.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를 한다.
다시 찾아온다.
합리적인 소비만 놓고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팬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브랜드가 꿈꾸는 가장 강한 고객은 가장 합리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수고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훈련으로 만들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각논리훈련.
감각과 논리는 얼핏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보인다.
감각은 느끼는 것이고, 논리는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느끼고,
왜 좋아하는지 관찰하고,
그 이유를 언어로 설명하고,
다시 그 구조를 내가 만드는 것에 적용해보는 훈련.
그게 감각논리훈련이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가.
좋아한다면 왜 좋은지 설명해본다.
평양냉면을 싫어하는가.
그렇다면 왜 싫은지 설명해본다.
거기서 끝내지 않는다.
이번에는 평양냉면을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로 가본다.
왜 그 사람은 한 그릇에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긴 줄을 서면서까지 그것을 먹는가.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위스키를 좋아하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가.
향인가.
맛인가.
잔을 들고 천천히 보내는 시간인가.
위스키가 싫은가.
목이 뜨거웠던 기억밖에 없고 도대체 왜 사람들이 이런 술을 마시는지 모르겠는가.
그렇다면 이번에는 위스키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본다.
왜 그들은 잔을 고를까.
왜 향을 맡을까.
왜 한 번에 삼키지 않고 천천히 마실까.
왜 증류소와 캐스크와 숙성 방식까지 공부할까.
왜 한 병의 위스키를 몇 달에 걸쳐 마실까.
도대체 그 모든 수고를 통해 무엇을 얻고 있는가.
내가 그것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그다음 문제다.
먼저,
다른 사람의 마음이 왜 그쪽으로 움직이는지를 보는 것이다.

당신은 누군가의 사진을 좋아하는가.
좋아하는 사진작가가 있다면,
그 사람의 무엇을 좋아하는가.
빛인가.
색인가.
피사체를 바라보는 태도인가.
보정인가.
사진 속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어떤 정서인가.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인가.
그리고 정말 촬영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그 사람에게 돈을 주고 일을 맡길 것인가.
여기까지 와야 한다.
사진작가가 자신의 사진을 팔려면 결국 누군가는 그 사진을 좋아해야 한다.
사진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고객이 찾아오는 이유를 광고에서 찾는다.
네이버 플레이스에서 찾고,
인스타그램에서 찾고,
입지에서 찾고,
가격에서 찾는다.
물론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사진가를 선택하는 이유가 그것뿐일까.
사진 자체에서 풍기는 것이 있다.
빛이 있고,
색이 있고,
보정의 정도가 있고,
피사체를 바라보는 방식이 있다.
오랫동안 반복해서 쌓인 사진 철학과 세계관도 있다.
그리고 사진 밖에도 많은 것이 있다.
사진가의 친절함.
배려.
따뜻함.
미소.
여유.
촬영을 받는 동안 느꼈던 감정.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누군가는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가를 좋아하고,
마침내 그 스튜디오라는 브랜드를 좋아하게 된다.
좋아하는 마음은 다시 찾아오게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게 한다.
추천하게 한다.
때로는 조금 비싸더라도 선택하게 한다.
그렇게 팬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 수고를 들여 무언가에 빠져본 적이 있는가.
멀리까지 찾아가고,
돈을 쓰고,
공부하고,
기다리고,
비교하고,
실패하면서도 다시 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조금 안다.
사람이 무엇 앞에서 돈을 쓰는지.
무엇 앞에서 시간을 내어주는지.
무엇 앞에서 기꺼이 수고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지를.
브랜드는 결국 누군가의 마음 안에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를 공부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도 누군가는 왜 그것을 사랑하는지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함부로 비웃지 않는 것.
그 안에는 내가 아직 모르는 감각과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
마음을 빼앗겨본 사람은 안다.
사람이 무엇 앞에서 기꺼이 돈과 시간과 수고를 내어주는지를.
좋아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세계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좋아하는 것에 기꺼이 수고하라.
그리고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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