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브레이 셔츠 한 장에서 배운 브랜딩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를 OTT로 다시 보게 되었다. 워낙 좋아하는 영화였고, 조용한 밤을 보내기 좋은 서정적인 영화다.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주인공 벤자민 버튼이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고 어려지는, 거꾸로 가는 생을 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벤자민은 점점 어려지고, 여주인공 데이지는 점점 늙어간다. 둘은 어려서부터 각별한 친구 사이로 지내게 되었고, 후일에는 연인이 되어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이 교차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유한한 시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앞에서 인생의 행복을 위하여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참으로 생각할 것이 많은 명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감독 데이비드 핀처는 수많은 명작 영화를 만든 거장 감독이다. 그리고 그는 이 영화의 중요한 디렉션을 ‘시간’에 두고 있다. 영화 속에는 시간을 대변하는 꽤 중요한 소품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트라이엄프 바이크, 두 번째는 샴브레이 셔츠다. 트라이엄프 바이크는 아직도 ‘본네빌’ 시리즈로 클래식 바이크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영국제 모터사이클이다. 1960년대의 모습을 현행 모델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샴브레이 셔츠는 1900년대 초기, 미국의 공장 노동자들이 작업복으로 입던 셔츠다. 하늘색의 거친 원단, 실용적인 투 포켓을 가진 이 셔츠는 현재에도 많은 브랜드들이 그 모습 그대로 생산하거나, 약간씩 포인트를 달리하여 선보이고 있다.
샴브레이 셔츠는 나도 즐겨 입는 셔츠라서 유독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브래드 피트가 입으니 미국식 멋이 제대로 살아나는 듯했고, 그 안에서 미학적인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 벤자민은 영화 곳곳에서 시간과 무관하게 이 샴브레이 셔츠를 입고 등장했고, 거의 평생 동안 트라이엄프 바이크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벤자민이 입은 샴브레이 셔츠를 자세히 보니, 목의 깃 쪽에 얼룩이 진 것이 그대로 등장하고, 어깨 부분 등이 묘하게 바랜 색감으로 남아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감독이 설정한 굉장히 디테일한 부분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시간이다. 감독은 그 주제의 조각들로 이러한 소품들을 선택했고, 새 옷의 깨끗함을 보여주는 대신 시간이 묻은 얼룩과 바랜 색감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시간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우리의 인생 곁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것들을 필름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벤자민의 태도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많이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사업으로 부자가 되었지만, 그 재산들을 다 팔아버린다. 그리고 데이지와 함께 머물 작은 집에서 산다. 그는 노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깊은 성찰을 인생 내내 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있어서 관조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먼저 나서지 않고, 사람들을 관찰한다. 발레리나로 인생의 전성기를 꽃피운 데이지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그리고 큰 사고를 당한 데이지를 뜨겁게 붙잡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자신만의 태도로 사랑하게 된다.
주인공 벤자민의 태도는 이 영화를 15년 만에 다시 본 내게 큰 울림을 남겼다. 내가 추구하는 것들과 닮은 점이 많았기 때문일까. 화려한 것들, 물질 소비에 인생의 중심을 두지 않고, 인생에 있어서 진실된 가치로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삶을 걸어나가며 시간을 살아가는 벤자민의 방식은, 내가 워크웨어나 데님을 대하는 방식과 닮아 있었다. 앞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촬영복으로 늘 같은 셀비지 데님을 착용하고, 그것이 나의 일에 대한 철학과 의지, 노력과 꿈을 새기는 에이징의 과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셀비지 데님과 샴브레이 셔츠는 단순한 패션 아이템으로만 남지 않는다. 이것은 삶 속의 평범한 것들을 인생의 미학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옷을 많이 사서 옷장을 가득 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잘 입고 있는 몇 벌의 옷이 땀에 젖고, 마찰을 일으키고, 세탁되고, 다시 땀에 젖는 것을 반복하는 사이에 나의 삶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옷은 새것일 때보다 나의 시간을 통과한 뒤에 더 깊어진다.
이러한 방식과 가치 추구는 나의 취향이다. 나는 확고하고 선명한 나만의 취향이 있다. 조금 전에 언급한 데님, 샴브레이 셔츠, 혹은 옥스퍼드 셔츠, 헨리넥 셔츠, A-2 재킷 같은 것들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산미가 풍기는 신선한 커피를 좋아한다. 피트향이 강하게 밴 위스키도 꽤 좋아한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 향을 치약 냄새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국밥 중에서는 담백한 국물을 담은 국밥을 좋아하고, 독서는 문학을 좋아하되 허무맹랑한 공상 이야기보다는 현실적인 스토리를 좋아한다. <닥터 하우스> 같은 미국 드라마를 좋아하며, 보통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온전한 캐릭터가 아니라 하우스처럼 완벽한 것 같지만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인물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 촬영은 조명을 사용하는 것에 마음이 꽂혀 있고, 조명을 쓰면서도 약간의 앰비언트 라이트를 남기는 것은 내 취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진작가, 특히 스튜디오 사진작가들은 양쪽 균형감과 대칭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비대칭에서 느낄 수 있는 불규칙한 리듬감을 더 좋아한다. 좌우가 완전히 같은 것보다 훨씬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는 나의 모든 취향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다. 카페의 카운터 앞에서 메뉴를 고르다가 선택 장애가 오는 일이 없다.
다시 샴브레이 셔츠로 돌아와 보자. 이 셔츠를 팔고 있는 브랜드들은 다양하다. 어떤 샴브레이 셔츠는 약 6만 원이면 살 수 있고, 어떤 샴브레이 셔츠는 40만 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나는 패션 관련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가격 차이와 선호도를 눈여겨보았다. 많은 이들이 6만 원짜리 셔츠를 ‘갓성비’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비싸더라도 어떻게든 40만 원에 육박하는 샴브레이 셔츠를 구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싼 브랜드의 샴브레이 셔츠를 입고 OOTD, 즉 Outfit Of The Day 인증 사진을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한다. 솔직히 40만 원에 달하는 샴브레이 셔츠는 일반적인 의류 가격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기에, 6만 원짜리 셔츠를 사는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어찌 보면 구매력의 계급도가 여기서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 커뮤니티 매너가 좋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은 그 브랜드의 옷은 줘도 안 입는다고 말하며, 그 브랜드의 옷을 잘 입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샴브레이 셔츠는 논란의 여지 없이 ‘워크웨어’다. 1900년대 초부터 미국의 공장 노동자들이 기름때를 묻혀가며 입은 의복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요즘에 이르러 ‘워크웨어 감성’이라는 워딩으로 브랜드와 소비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실제로 워크웨어는 현 시대에 이르러 클래식한 미학과 역사를 담으면서도 막 입기 편한 옷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한동안 이러한 워크웨어의 인기가 식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워크웨어 감성에서 ‘감성’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단면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감성은 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워크웨어에서의 감성 속에 깔린 레이어는 시간성, 역사, 의미, 노동, 생활, 반복, 마찰 등 수많은 것들이 얽혀 있다. 그런데 패션 커뮤니티나 이러한 옷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감성이라는 것은 단순히 아웃핏과 가격의 레이어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워크웨어는 기름때와 페인트가 묻어도 상관없는, 정말 일할 때 입는 옷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브랜드의 계급과 가격의 차이로 감성을 해석하고 있다. 워크웨어가 빛날 때는 그 옷을 착용하고 열심히 일을 하거나, 오랫동안 입어서 시간을 축적시킨 뒤 바라보는 세월의 촉감이 느껴질 때다. 비싼 의복의 구입 가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6만 원짜리 셔츠를 입어도 함께 동고동락한 시간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면, 그리고 40만 원짜리 샴브레이 셔츠를 수십 년 동안 인생의 벗으로 길들이고 벤자민이 입은 셔츠에 묻은 얼룩처럼 그 얼룩마저 나의 역사라고 여길 수 있다면, 그것은 이 분야의 의복에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커뮤니티에서 질문한다. 이 바지가 저한테 어울리나요? 이 가격의 셔츠를 사도 무시당하지 않을까요? 이 바지는 너무 통이 좁아 보이나요? 이런 질문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게시판을 채운다. 누군가 입은 것은 멋져 보이는데, 그것이 자기에게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타인에게 묻는 것은 자기 취향에 대한 기준과 해석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타인을 따라만 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감성이라는 것도 맨 윗 레이어인 아웃핏과 가격만 보이게 된다. 그렇다면 자기를, 더 정확히는 자신의 취향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뻔한 소리겠지만,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독서를 해야 한다. 독서는 사고 회로를 열어주고, 세상의 수많은 책 중에는 자기 자신을 일깨우기 위한 인문, 철학, 문학 작품이 넘쳐난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이러한 물음은 사고 회로가 열리지 않으면 쉽게 생각하기 어렵다. 이런 것들이 잘 연결될 때에 자신만의 디렉션이 잡히게 된다.
삶 속에 자기 추구와 디렉션이 없게 되면, 폰만 열어도 비싸고 화려한 것들에 쉽게 흔들리게 된다. 이러한 자극적인 물질들의 반대 지점에 있는 명상, 독서, 토론, 사유 같은 것들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없다. 즉각적인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셔츠를 산다거나 구두를 사는 것은 바로 사진을 찍어 올릴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기분도 든다. 그래서 사람들의 취향의 레이어는 겉으로 보이는 최상단 레이어에 더욱 쏠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 묻지 않고서도 자신이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샴브레이 셔츠를 구입하는 것. 중요한 것은 비싼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자신의 곁에 두고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다. 그리고 그 의미는 감성, 혹은 취향의 레이어로 바라봐야 한다. 레이어가 깊어질수록 취향은 더욱 입체적인 것들로 채워지게 된다. 취향은 곧 브랜딩으로까지 이어진다. 자신의 삶을 브랜딩으로 바꾸고, 어떤 사업을 만들고, 단순히 계정 하나를 키운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매력적인 것으로 채우는 것은 값비싼 셔츠들이 아니다. 저렴한 셔츠라도 자신의 삶의 요소들이 깃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브랜드가 될 수 있다.
브랜딩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비싼 것들로 가득 채운 편집샵처럼 되는 것이 좋은 브랜딩이 아니다. 내 경우에는 사진 한 컷을 작업해도 그 속에는 조명, 상황광, 디렉션, 에너지, 아이의 자부심, 부모의 감정, 아메리칸 스타일 톤 앤 매너, 현장 시스템까지 들어오게 된다. 이런 다층적인 레이어가 한 장의 사진 속에 포함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각각의 이유가 살아서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사진 작업이 아닌 다른 장르의 것들도 마찬가지다. 좋은 브랜드들에는 각자의 스토리텔링이 있고, 사업주가 추구하는 브랜드의 목적이 있다. 반대로 최상위 레이어만 가지고 그 깊이를 억지로 만들려고 하는 브랜드들도 있다. 알맹이는 없고 무드와 감도라는 허울 가득한 설명만 하는 브랜드들도 눈에 자주 띈다. 그런 브랜드의 사업주는 취향이 다채롭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만드는 브랜드에 대하여 스스로도 설득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각자 좋은 브랜드가 되려면, 먼저 스스로 설득되는 취향의 레이어를 가져야 한다. 벤자민 버튼의 샴브레이 셔츠와 트라이엄프 바이크가 왜 그에게 고귀한 가치를 갖게 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좋은 취향이란 비싼 것을 알아보는 눈이 아니라, 평범한 것에도 깃든 의미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태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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