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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나의 작업복, 나의 아카이브

 

 

나의 작업복, 나의 아카이브

 

 

내가 현장에만 입고 다니는 셀비지 데님이다.

셀비지 데님(Selvedge Denim)은 구형 셔틀직기로 짜낸 데님 원단으로, 원단의 가장자리가 풀리지 않도록 마감 처리되어 생산된 데님을 말한다.

 

작년 6월쯤, 일본 후쿠오카에 놀러 갔을 때 구입한 페로우즈라는 브랜드의 대전판 복각 모델이다.

대전판 복각 데님(WWII Reproduction Denim)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2~1945년, 미 전시생산국의 물자 절약 통제령에 따라 간소화되어 생산되었던 리바이스 S501XX 등의 청바지를 재현한 복각 데님을 말한다.

 

구입 후에는 거의 촬영할 때에만 입어왔다. 나에게는 옷이라기보다 유니폼에 가깝다.

 

처음의 모습

 

 

당연히 처음 구입했을 때의 모습은 훨씬 더 짙고 단단했다. 셀비지 데님의 특징 중 하나는 에이징이라고 할 수 있다. 착용자의 생활 방식, 움직임, 반복되는 자세에 따라 데님의 색과 주름, 마찰의 흔적이 모두 다르게 만들어진다. 자기 자신만 만들 수 있는 고유한 에이징. 그것이 사람들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도, 과거 리바이스에서 만들던 옛 방식의 복각 데님을 찾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생지 상태에서 시작하여 점차 변화하는 색, 대비감, 천의 질감은 착용자 고유의 시간과 기억으로 새겨진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히 낡아가는 옷이 아니라, 시간을 입는 물건에 가깝다.

 

사람들은 대부분 새것을 선호한다. 질리면 교체하기 바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작년부턴가 그러한 삶의 소비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의류를 오래 입을 수 있는 클래식한 것들로 대부분 교체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도 새로운 소비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방향은 달라졌다. 빨리 낡아서 버릴 옷이 아니라, 오래 입으며 나와 함께 변화할 수 있는 옷을 고르게 되었다. 위에서 본 페로우즈 데님처럼 반복 착용할 때 생기는 흔적이 가치가 되고, 주름과 상처가 시간의 증명이 되며, 시간 자체가 하나의 디자인이 되는 옷을 찾게 된 것이다.

 

내 작업복은 거의 이 데님 한 벌과 아이모션 팀 티셔츠, 그리고 신발은 겨울에는 레드윙 부츠, 더운 시즌에는 뉴발란스 2002 모델로 정해져 있다. 예외 없이 거의 동일한 복장이다. 이러한 복식의 관념은 내가 촬영하고 있는 ‘미국식 스포츠 미디어’ 사진 장르와도 연결되어 있다. 내가 만들고 있는 상업 예술의 장르와 동떨어진 의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누가 특별히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연계선상에 있는 복식을 갖추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나 자신을 위한 의식에 가깝다. 사실 트레이닝 바지 같은 것을 입으면 촬영할 때 훨씬 넉넉하고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 옷차림은 내가 만들고 싶은 사진가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리바이스에서 출발한 1960년대 이전의 복각 데님을 촬영 현장에서 애용하게 되었고, 이제는 이것보다 더 나은 촬영복을 잘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나의 워크웨어가 점점 각별해지고 있다. 나의 직업은 기본적으로 사진 촬영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현장은 카메라 하나 들고 가볍게 움직이는 촬영과는 거리가 멀다. 나의 현장은 차 한 대 분량의 조명 장비, 스탠드, 모니터, 카메라 하드케이스, 그리고 전동 웨건과 함께 시작한다. 조명을 사용하는 스포츠 촬영을 하기 때문에 장비가 어마어마하다. 촬영 장소도 전국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다닌다. 인조잔디 축구장일 수도 있고, 아이스링크일 수도 있다. 장비를 끄느라 데님에는 늘 스침이 발생한다. 장비를 조립할 때는 쪼그려 앉거나 무릎을 꿇는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한쪽 무릎은 바닥에 대기도 하고,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서 장비를 세팅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이제는 너무 익숙하다. 그렇게 움직일 때마다 이 데님에는 나의 현장이 조금씩 새겨지고 있다.

 

내가 하는 스포츠 촬영 장르는 아직 하나의 단어로 완벽히 정리되지는 않았다. 볼륨 스포츠, 미국식 스포츠 미디어, 아트 스포츠 등 여러 가지 설명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스튜디오 안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앉혀두고 촬영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그 현장에 20분 안에 스튜디오를 만들어내야 한다. 필요하면 대형 배경천을 치고, 전기를 끌어와 고출력 지속광을 켠다. 야외라면 햇빛과 바람을 계산해야 하고, 실내라면 동선과 안전을 먼저 잡아야 한다. 국내 사진 촬영 현장 중에서도 아이모션의 현장은 꽤 많은 장비가 오가는 축에 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하드한 상황 아래에서 정확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펼치기 위해서는 나와 팀이 먼저 굴러야 한다.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한 일이다.

 

촬영장에서는 모든 것이 설계대로 움직인다. 조명과 피사체의 거리, 피사체와 카메라의 거리도 걸음수로 체크한다. 초점거리도 정해져 있다. 모든 상황이 즉흥적인 실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매뉴얼에 따라 움직인다. 셔터스피드와 광량 역시 거의 정해진 값 안에서 조정된다. 심지어는 테더 케이블의 클램프 고정 위치도 마커로 표시해둔다. 모니터링이 끊어지는 불상사를 방지하고, 카메라 고장을 막기 위함이다. 아이모션의 촬영 현장에는 그런 팽팽함이 있다. 우리가 팽팽하지 않으면 고객이 불편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키즈 스포츠 촬영이라면, 모니터링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아이들의 모습을 바로 체크하지 못한다. 동선이 잘못되면 축구공에 장비가 맞을 수도 있고, 장비 하나가 쓰러지는 순간 현장의 흐름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촬영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팀부터 통제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촬영은 불가능하다.

 

나의 워크웨어, 복각 셀비지 데님 한 벌에는 그런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다. 유도 선수가 유도복의 매무새를 다잡으며 경기에 대한 각오를 다지듯이, 군인이 제복에 칼각을 잡아 다리듯이 말이다. 나는 나의 브랜드, 아이모션의 목표를 위하여 얼마든지 뒹굴 수 있다. 전쟁에 나갈 준비가 된 병사처럼. 모든 선수들, 모든 아이들을 촬영하며 단 한 명도 퀄리티가 떨어지는 이미지를 받지 않게 만들겠다는 곤두섬이 있다. 위 사진 속 데님의 고양이수염, 그러니까 고관절 부위에 생긴 여러 개의 줄과 대비감이 진해질수록 나의 촬영 마인드도 더 깊게 새겨질 것이다.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은 데님의 에이징, 혹은 페이딩이지만 그동안의 고생의 흔적이 이미 꽤 선명하게 보인다. 옷걸이에 걸어놓고 보니, 음, 그 사이에 이만큼 했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시간이 아카이빙 된 푸른색 작업복을 보며 잠시 감탄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스튜디오 사업으로 인생의 멸망을 한 번 당했다. 그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뼛속 깊이 새긴 채 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기억이 희석되고 옅어질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나는 아직도 그 절벽으로부터 딱 한 걸음 앞으로 나온 것뿐이라고 믿는다. 언제든 다시 절벽 가까이 갈 수도 있다. 누군가는 나를 두고 여유 없이 삶을 너무 밀어붙인다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앞으로 가는 것이 행복이다. 그 처절했던 시절에 나는 매일 상상했다. 내가 여기서 회복할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까.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렁에서 빠져나와 내가 하고 싶은 사진으로 다시 나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실컷 웃으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이루어졌다. 그것보다 더 좋은 일들도 이어졌다. 지금은 꿈만 꾸던 성공으로 향하는 열차에 탑승한 느낌이다. 기차가 탈선만 하지 않으면 된다.

 

지금은 정말 좋은 시기다. 더 크게 성공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조바심이 날 때도 있다. 시간을 단축하고 싶고, 더 빨리 증명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마음먹은 그대로만 가면 된다. 워크웨어를 입고, 현장에서 뒹굴며, 좋은 촬영을 하고, 우리의 이미지들이 좋은 브랜딩의 가치로 이어지게 만들면 된다. 차 한 대 분량의 조명을 가지고 다니는 미친 사진작가의 의지는 그런 길 위에서 계속 팽팽하게 다져지고 있다.

 

아마 사진 속의 데님, 나의 작업복은 다음 1년 안에 중청 이하로 색이 연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점점 많아지는 촬영량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새 작업복 데님을 들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모션의 초기에 입었던 이 데님은 내 공간 어딘가에 전시될 것이다. 어쩌면 수십 년이 지난 후, 내 개인 전시에 작품과 함께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와 아이모션의 시간을 아카이빙해보려 한다. 사진을 줄줄이 보여주는 것보다 더 강렬한 은유가 담긴 매개가 될 수도 있다. 그 안에는 나의 각오, 노력, 의지, 자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저 시절에는 정말 저렇게 굴러다녔지, 라며 함께했던 동료들과 너털웃음을 지으며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데님을 그저 낡은 청바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현장에서 보낸 시간이고, 다시 실패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아이모션이 아직 작고 거칠지만 가장 뜨거웠던 시절의 기록이다. 옷은 낡아가지만, 그 안에 새겨진 의지는 주름의 대비감처럼 더 선명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