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되, 모르는 것이다
사진작가로서의 나의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의 동력원은 큰 실패로부터 나온다. 그야말로 생존하기 위한 것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진화하는 동식물처럼. 누군가 보기에는 나의 현재 활동이 매우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입에서 듣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못 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혼란스러운 사진 업계 속에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와 방향성을 잡은 것만으로도 꽤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안정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온몸의 몸부림이 있기 때문에 아직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에 가깝다.
그 사실을 겉만 본 사람들은 알기 어렵다.
나는 분명 3년 전, 스튜디오 사업에 완전히 실패한 아무개 사진가였다. 이 사실을 아직도 세포 하나하나에 새기고 있다.
사진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메타인지에 대하여 대부분 커다란 착각을 한다. 이 직업의 흥미와 매력,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생존 가능성에 대한 것들 말이다. 이건 그간 내가 늘 떠들고 다니던 부분이라, 이준희 작가에게 관심이 있던 이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정작 본인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어떤 상태이며,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를 보고 싶은 대로만 바라본다. 나, 혹은 더 위대한 명사들의 이야기 속에는 늘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라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것을 듣고서도 본인이 제대로 된 위치와 방향을 잡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나 자신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인간으로써 스스로 100% 완전한 객관성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못 보는 부분도 너무 많다.
그래서 이럴 때 내 곁에서 소상한 조언을 주는 이들의 말은 천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된다.
그 누구에게나 상업 사진작가라는 직업은 시작은 위대할지언정, 목표에 닿는 과정은 처절하기 그지없다. 이런 말들을 모르고 직업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알되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모르는 상태다. 그리고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영어로는 Unknown Unknown 상태라고 부른다.
이러한 것을 한 번 놓치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계속 Unknown 상태로 남게 된다.
나 역시 실패 전에는 여지없이 이런 상태였다.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바보였다.
그 까막눈 상태를 단번에 바꾼 사건이 바로 스튜디오 사업 실패였다.
시작부터 객관적이지 못했고, 사업 내내 잘못된 시점으로 인하여 잘못된 판단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 상황을 제대로 알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른 채로 계속 몰랐고, 결국 뒤늦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에서야 무엇을 몰랐는지 알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미 직업 사진 세계에 뛰어들었거나, 상업 사진 세계를 목표로 한다면, 부디 이런 전철을 겪기 전에 자신의 Unknown 상태를 미리 깨부수길 바란다. 완전한 객관 상태에 이르는 노력을 수시로 기울여야만 한다.
나는 나의 실패로부터 비롯한 경험들을 전달하기 위하여 몇 명의 제자들을 두었고, 이중에서는 앞으로 전진하는 제자들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귀에서 피가 나도록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다시 Unknown 상태로 들어가는 이들도 보게 되었다.
왜 그런걸까?
그리고 그들은 자기 변론을 앞세워, 상황을 바꾸지 못한 이유를 정당화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나약함과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싫은 것이다.
자신의 민낯을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핑계를 대거나 사실을 거짓으로 바꾼다.
이러한 왜곡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왜곡이 자기 자신에게 진실이 되어버린다.
누구에게나 방어기제는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커다랗게 부풀어오르는 가짜 진실은 자신마저 집어 삼키게 될 것이다.
쓰레드에 가끔 올라오는, 수 년간 사진을 했지만 이제 그만두려 한다,
자신이 게을렀다, 수 많은 사진가들속에서 경쟁에서 밀렸다,
이런 글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을 몇 줄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이 무엇을 놓쳤는지. 어떤 자기 포장속에서 스스로가 못하거나 놓친 것을 왜곡시키고 있는지.
더 말 할 것 없이 Unknown의 연속이다.
이런 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역시 가급적이면 직업 사진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내 경험으로도 이 상태에 빠지기 쉬운 것을 내 스스로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사진은 시각을 가지고 예술을 만들어가는 장르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사진을 찍고 있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며,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지에 따라서 작업은 완전히 달라진다. 더 잘 찍게 될지, 가볍게 그치고 말지, 이런 정신적인 의지와 태도들이 작업의 선택과 완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자신을 왜곡하고 있다면 시각은 흔들리게 된다.
자기 자신을 왜곡하지 않고, 순수하고 진실된 자세로 스스로를 인식하며 길을 만들어가는 이들은 분명 목표에 이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적어도 나는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그 벼랑 가까이 가지 않기 위하여 쉬지않고 계속 자신을 갱신하려 한다.
나는 나를 완전히 믿지 않는다.
내게 도움을 주는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려 하고,
AI를 활용하여 늘 무엇이 부족한지, 내 방향은 틀리지 않는지,
나의 사진 실력은 세계 기준속에서 어느 정도인지를 물으며
언제나 나의 위치를 재정렬한다.
그 위치 인식이 결국 나의 사진 작업 결과물로 이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잘못된 자기 위치 인식은 끝없는 왜곡된 계산을 만든다.
시각이 진실되어야만하는 사진작가들은 반드시 스스로에 대한 왜곡을 경계해야 한다.
조금 못하고 있더라도 자신의 솔직한 위치를 받아들이고, 다시 재정렬할 각오를 늘 해야만 한다.
여기는 수퍼 레드오션이다.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정직한 위치 위에 올려놓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업계의 검은 목구멍속으로 빨려들어갈수도 있다.
그리고서 포기한 자신을 두고서 핑계와 거짓으로 다시 한 번 객관과 진실을 포장하게 된다.
그 상태로는 다시 재기하여 어떤 출발선 앞에 다시 선다고 하더라도 삐뚤린 방향을 만들게 될 것이다.
또 Unknown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뒤떨어진다고 변명과 핑계를 대지 말라.
자기합리화를 하지 말라.
그것은 결국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자신이 못했으면,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인정 이후에야, 비로소 다음 방향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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