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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스타카토: 자신의 스타카토를 하고 있는가?

 

스타카토: 자신의 스타카토를 하고 있는가?

 

 

 

민방위도 끝난지가 몇 년이 되었다. 내 먼 옛 기억속에 군시절은 관악기의 소음과 연주로 가득하다. 군악대에서 트럼펫병이었기 때문이다. 실용음악을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전공 악기와 관련이 없던 트럼펫을 외도하듯 따로 배우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전공 악기에 몰입해도 모자라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쳇 베이커의 부드러운 트럼펫 음색에 푹 빠져서 노력(기회비용)을 분산했고, 돌이켜보면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그로 인하여 군악대를 지원했고, 되도 않는 실력이었지만 TO대비 부족한 인원 덕분에 쉽게 군악대로 입대하게 되었다.

 

입대 당시, 워낙 기본기가 없었고, 트럼펫을 약간 불 줄만 안다는 이유로 군악대에 들어간터라, 막내 생활때부터 혹독하게 욕을 먹으며 기초 연습을 했다. 톤 연습부터 스케일 연습은 기본이었고, 군악대 연주의 꽃이 스타카토 주법이라는 것을 이때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악대장은 연습 시간마다 얼굴을 붉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스,타,카,토! 라고 악을지르며 제대로 된 스타카토를 연주하지 못하는 악대원들에게 얼차려를 부여했다. 스타카토는 음표의 본래의 길이보다 짧게 끊어서 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해당 음표의 길이보다 1/2만큼 짧게 연주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경쾌함, 날카로움, 선명한 느낌을 주는 것이 관건이라고 한다(사전적 의미를 검색해본 바). 손가락을 피아노 위나 타악기 위에 두드려본다면(책상 위도 좋다) 통, 통, 통, 통 하는 느낌에 가까울 것이다. 아마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을 다녀 본 사람이라면 어렴풋이 기억이 날지도 모른다.

 

군악대의 연주는 이 스타카토 연주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군대의 행진이나 퍼레이드를 떠올려보면, 군인들이 총이나 깃발을 들고 힘차게 발걸음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이 상황에 걸맞는 연주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절도가 있고, 힘이 있으면서도 경쾌해야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스타카토의 반대 개념인 레가토(음과 음 사이가 끊어지지 않게 부드럽게 연주) 주법으로 연주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예기치 못하게 나는 쳇 베이커의 레가토 연주를 동경해왔지만(유약하고 부드러운 연주자), 군대에서는 전혀 다른 연주를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거의 2년 동안 스,타,카,토!라는 말을 수천 번 이상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나는 군대를 제대하면서 질린듯 관악기를 손에서 놓게 되었다.

 

현재의 나는 민방위도 끝난 아재 중의 아재지만, 평범하지 못한 취미가 있다. 야심한 밤에 위스키나 하이볼을 마시는 것, 그게 이상한 취미는 아니고, 술을 마시면서 유튜브로 아이돌의 춤을 보며 모션과 에너지를 느껴보는 습관이 있다. 걸그룹 아이돌이 단순히 예뻐서 그렇거나 딱히 그쪽 취향은 아니고, 인간의 수명 그래프 안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생생한 이들의 동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어떠한 것들을 흡수하기를(배우기를) 원하는 것이다. 실제로 하고 있는 사진작업이 '모션'을 촬영하는 것이기에, 사람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그들의 플로우에서 느껴지는 표현의 디렉션을 찾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움직임은 음악적인 것 뿐만 아니라 분명 표현적인 것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다섯 명의 그룹이 춤을 추고 있을 때 느껴지는 전체적인 흐름과 개인적인 각각의 움직임은 음악을 재생할 때 믹서나 오디오 장치에서 볼 수 있는 이퀄라이저의 파형과도 닮았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재생되는 동안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 물결. 그룹의 춤을 보고 있으면, 잔잔한 움직임의 피아니시모(음악에서 '아주 여리게' 연주하라는 뜻을 가진 강약 기호)부터 모두가 에너지를 방출하는 포르티시모(피아니시모의 정반대 지점에 있는 강약 기호로, '아주 세게' 연주하라는 뜻)까지 그것들이 한 공간 안에서 다채로운 흐름을 보이는 것이 매우 흥미롭기도 하고, 특히 춤을 정말 잘 추는 그룹은 그 느낌이 시청자에게 온전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그런 이퀄라이저같은(끊임없는 파도처럼 해안선을 오가는 것 같은) 표현을 잘 하는 그룹,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춤의 디렉션이 제대로 전달되게 하는 그룹은 '뉴진스'다.

 

거의 모든 곡들이 그렇지만, 특히나 뉴진스의 'ETA'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무대를 보면, 모두가 춤을 정말 잘 춘다는 느낌을 한참 뛰어넘어서, 각자가 각각의 동적 언어를 정확하게 표현하면서도, 그 춤 자체를 추기 위해 추는 것(일이니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춤 자체를 즐기고 있으며, 왁킹(197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클럽에서 유래한 스트릿 댄스 장르)이라는 춤을 자신이 직접 체득하여 추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왁킹이라는 춤 장르를 바라보건대, 내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관절의 스,타,카,토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으며, 이는 그 옛 시절 '악대장'이 악을 지르며 외치던 스,타,카,토와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 시절 트럼펫 및 관악기로 스타카토를 연주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면, 뉴진스는 관절 자체를 자유자재로 스타카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각자의 개성적인 스타카토를 말이다. 단순히 위스키에 취해서 드는 느낌이 아니다. 몇 년 동안(지금은 안타깝게도 활동을 못하고 있지만) 뉴진스라는 다섯 명의 멤버들을 보았을 때, 해린과 하니 등의 멤버들이 각자의 스타카토를 관절과 몸으로 보여주었고, 이들이 각각 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관절의 앙상블이 한 팀의 플로우로 화합하고 있다는 점이 살면서 지금까지 봐왔던 댄스 그룹들과는 완전하게 달리 보였다. (물론 그룹마다 각각의 앙상블을 가졌다고 느껴지는 팀들이 있다) 이들은 피아니시모에서도, 포르티시모에서도 어우러지는 매력 넘치는 스타카토를 구사하고 있고, 춤을 단순히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갓 스무살에 불과하지만 자기만의(본진) 춤을 완성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유튜브의 유명한 영상중에, 한 흑인 재즈피아니스트 선생님(Barry Harris, 재즈 피아니스트의 전설)이 학생들 앞에서 "너희는 전혀 스윙하고 있지 않아." 라는 일침을 주며 스윙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상이 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스윙이라는 이론적인 음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네 자신 안의 스윙을 연주하라는 가르침이다. (사실, 실용음악을 전공했지만서도 스윙 리듬은 정말 어렵다) 스윙이라는 리듬이 연주자 자신 안에 완전히 체화되어 자기 스스로의 스윙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당연히 배리 해리스는 이미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의 스윙을 눈을 감고도, 다리를 꼬고 연주해도 얼마든지 구사할 수 있겠지만, 이제 재즈의 세계에 막 발을 들인 학생들로서는 그냥 입만 벌리고 쳐다 볼 수 밖에 없는 연주였을 것이다.

 

 

 

 

 

이처럼, 트럼펫으로 스타카토를 하든, 왁킹 댄스로 관절의 스타카토를 보여주든, 스윙 리듬을 자신의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모두 엄청난 수련과 내공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 것이냐 하면, 사진작가로서 자신의 본진(어느 특정 장르에서 전문화를 할 것인가)을 선택하고, 그 길을 수련하는 것이 단순간에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자 한다. 단순한 '이해'와 내적 '체득'과 '발산'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전문가가 된 사진작가라면 사진의 암부속에서 잔잔한 피아니시모의 연주를 할 수도 있고, 에너지가 폭발하는 연출을 담은 사진을 통하여 포르티시모를 터트릴수도 있다. 이는 우연에서 만드는 사진들이 아니다. 내가 스타카토를 하고 싶으면 정확한 타이밍에 스타카토 할 수 있어야 하고, 펑키 리듬을 연주하다가도 갑자기 리듬이 전환되어 스윙리듬을 보여줄 수도 있어야 한다. 밴드가 사전에 정한 약속에 맞추어 연주 타입을 바꾸듯이 한 장의 프레임 내에서도, 혹은 그날의 포토 세션 내에서도 자신만의 사진을 의도대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진작업을 우연에 기대면 안되는 이유이며, 모든 기본기는 언제나 완전한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많은 사진가들이 착각하고 있는 지점이며, 자신이 카메라를 들었고,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데 그에 끌려다니는 것인지, 자신의 스타카토나 자신의 스윙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을 말하고 싶은 것) 그리고, 자신의 사진 속에서 스타카토는 무슨 의미일지, 피아노, 피아니시모, 포르테, 포르티시모, 리타르단도, 레가토, 루바토...등의 의미는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교양적인 토양을 넓혀서 이 세상의 모든 의미있는 것들의 치환을 즐겁게, 재밌게, 맛있게, 도전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높이에 오르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그때는 자신이 사진업을 하고 있든, 연주자이건, 댄서이건, 개인 브랜드로 사업을 이끌고 있건간에 어떤 포인트에서 스타카토를 할 수 있을지, 어느 순간에 레가토로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이끌 수 있을지, 자신의 세상을 지휘할 수 있는 내공의 여력이 갖춰지게 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북항을 달렸다. 이번주 목표는 40km 오버인데, 내일 하루만 더 뛰면 목표 거리를 훌쩍 뛰어넘게 된다. 뛰면서 악대장이 험상궂은 얼굴로 악을 지르며 외치던 스,타,카,토!의 의미를 떠올렸다. 러닝 속의 발걸음의 통통거림이 스타카토와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스타카토는 러닝속에도 있다. 그리고, 내가 촬영하는 축구 장면속에서 선수가 슛하는 순간도 스타카토다. 공을 찰 때의 펑! 하고 터짐의 시각적 에너지. 오타니 쇼헤이가 시원하게 홈런을 치는 순간도 스타카토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같은 명작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수많은 포인트들도 스타카토다. (숀 펜의 록조 연기) 그리고 엊그제 저녁에 오븐에 구운 윙에 곁들였던 '라파우라 스프링스'라는 뉴질랜드 말보로 지역의 쇼비뇽 블랑 와인의 치고 나오는 과실 산미도 스타카토다. (뉴진스의 춤에 하염없이 빠지며 와인을 마셨다, 덕분에 저녁식사는 스타카토로 가득했다) 이 와인은 말이 없다. 조용히 혀에 닿는 순간 느껴지는 산미가 스타카토로 존재의 대비감을 알린다. 어제 점심에 먹은 타코도 마찬가지다. 타코집 서버는 많은 비율로 한국 사람들이 고수를 싫어하는 것을 염려하며 조심스레 고수를 꼭 넣어서 드셔보시라고 했고, 고수는 타코 안에서 정말로 스타카토를 외치고 있었다. 소고기와 치즈의 느끼함의 반대 지점에서 정확히 존재감을 대비시키고 있던 것이다. 덕분에 전체적인 타코 맛이 훨씬 입체적이 되었다. (나는 평소 고수를 굉장히 좋아한다)

 

이 외에도 세상에는 수많은 스타카토가 존재한다. 스타카토는 이 세상에 대비를 준다. 모두가 흐르는대로 놔두는 레가토를 말하고 있다면, 스타카토는 명징한 대비적 차이를 외친다. 내 삶으로부터 비롯된 사진작업과 이미징 디렉팅 작업들 속에는 어떤 스타카토가 존재하고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군악대 시절이 참으로도 싫었지만, 세상만사가 모두 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군분투했던 그 세월 속에서도 배울만한 것은 있었다.

 

 

 

 

자신의 스타카토나 자신의 스윙을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