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향

취향을 검색하는 시대, 나는 40대라서 다행이다

 

취향을 검색하는 시대, 나는 40대라서 다행이다

 

 


 

 

지난해부터 독서나 강연으로 만난 명사들의 브랜딩, 그리고 인공지능에 대한 견해들 중에서, 공통된 예견이 있다. 지금 현재의 어린 세대, 10대와 20대들은 실제 몸으로 겪는 경험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취향을 갖기 전에 세상에 나서고, 취향이라는 개념조차 검색으로 알게 되는 시대다. 무색무취의 청년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세상을 모니터로만 보는 세대들은 AI 패러다임의 갈림길에 서서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유의 빈곤, 취향이 없다면, 브랜딩도 없다.

요즘은 취향도 검색해서 배운다.



헌데, 나의 경우에는 AI 패러다임을 정확히 40대 초반에 맞고 있다. 나의 에세이 <빛과 디렉션>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나는 2~30대에는 정말 한량중의 한량이었다. 대학에서는 음악을 전공했고, 무얼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 방황가였다고. 하지만, 그 시절에 도피처로 삼았던 독서의 시간, 수십 개국을 넘어다녔던 여행의 추억, 취미로 사진을 찍으며 마주했던 세상의 빛, 전공은 실패했지만 짝사랑했던 음악까지, 의도치 않게 내가 좋아했던 어떤 것들이 거칠 것 없이 지속적으로 내부로 흘러들고 있었다.

 

 

 

 

그 재료들은 이제 나의 요리 재료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실제로 다뤄본 사람이다. 당시의 독특했던 경험들은 지금의 사진작업이나 브랜딩의 과정에 있어서 창의적인 영감이 되고 있다. 현재의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도 독특하게 보이는 생각과 튀는 방향성은 당시의 경험으로부터 연결되어 있다. 그 중에서 특히 독서와 여행은 그 어떤것과도 비견할 수 없을만큼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느껴진다. 독서는 세상의 예술과 인문과 사회, 역사를 이해하게 만드는 거시적인 가상의 공간을 열어주었다면, 여행은 그것을 행위적으로 실증하는 체험으로 연결되었다. 너무 놀러만 다니는 것 같아서 부모님이나 스스로에게 좀 미안했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또렷한 대비감을 가진 생각과 작업들은 아마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 역시 AI 패러다임 앞에 서 있는 똑같은 한 명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마주했던 것, 10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경험을 퇴적해 온 것은 앞으로 다시 할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얼마전에 이탈리아에서 일을 마치고 휴가 개념으로 프랑스를 열 흘 정도 여행했는데, 그 시절에 했던 유럽에서의 밀도 높은 방랑의 감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나이가 든걸까? 아니면 생각이 완전히 바뀐걸까? 둘 다 일수도 있지만, 여행이라는 행위를 대하는 자신만의 개념과 태도도 변했고, 여행 가이드북을 사서 공부한 다음에 떠나는 시절에 느꼈던 아날로그적인 낭만이 희박해졌기 때문일수도 있다. SNS와 AI, 에어비앤비 시스템은 여행을 촘촘하게는 만들었지만 역으로 가볍게 만든 측면도 있다. 그런 세상의 변화를 체감하며 예전 그 시절처럼 여행하는 것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그때의 기억이 얼마나 더 소중한지 잘 알게 되었다. 이것은 돈으로도 구할 수 없는 그 시대만의 가치였다는 것을.

 

 

 

 

AI,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변화. 그 앞에서 인간은 어떤 내면의 재료를 가지고 있고, 그 고유한 재료를 활용해보았던 실제의 경험이 있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서 단순한 음식밖에 만들지 못하는 이제 막 요리를 취미삼아 경험한 자와, 냉장고를 부탁해에 등장하는 창의적인 쉐프들처럼 평범한 재료로도 근사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자의 차이. 내면 안에 준비해둔 재료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재료를 활용해서 실제로 그것을 다양하게 다뤄본 경험의 두께의 차이는 앞으로 AI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인간만의 생존, 발전 방식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단순히 모든 것을 다 알려주는 도구라고 착각하지만, 질문자의 사유의 깊이에 따라서 전혀 다른 차원의 대답을 해줄 것이다. AI는 답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질문자의 깊이를 드러내는 도구다. 실제 세상에서 움직여서 해답을 내는 존재가 아니기에, 경험에 근거한 깊이와 밀도를 전달하지는 못한다.

 

 

 

 

나는 이제 완전한 4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나이를 맞았다. 유교에서는 40을 불혹이라고 불렀으며, 인간의 평균 수명이 짧았을 때에는 이 정도 나이는 인생이 저물고 있는 시기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기대 수명이 100살을 훌쩍 넘은 시대의 40대는 아직 청년쪽에 가까운 나이다. 그리고 40대 초반에 맞은 AI의 바람은 어찌보면 꽤 괜찮은 시기에 전환점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10대때부터 40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실제적 경험을 쌓았고, 아직은 체력적으로도 왕성한 시기다. 건강 관리를 잘 하지 못했다면 아픈 곳이 많을수도 있는 나이이긴 하지만, 나는 이를 대비하여 서른 살이 되자마자 복싱을 시작해서 7년을 경험했으며, 팬데믹 시절부터는 러닝과 요가를 시작했고, 약 2년 전 부터는 근육량을 늘리기 위하여 웨이트까지 병행하고 있다. 주당 목표를 세워서 요가는 매일매일, 러닝은 주 3회, 웨이트도 주 3회를 하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일부 20대들보다도 더 안정적인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AI와 회의하며 은퇴를 예견하는 90대까지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루틴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글은 단순히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의 운동은 막연한 건강 염려도 아니다. 내가 이러한 생각과 운동을 하게 된 것은, 축적된 경험을 현실로 구현해 낼 몸, 즉 '엔진'을 최상으로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예전 시대의 사람들은 40대까지도 아직 어떠한 경제적,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인생을 잘못 산 것 처럼 암울하게 여기고는 했다. 앞으로는 다시 기회가 없을 것처럼 불안에 떨기도 했다. 본 작가 또한 30대가 넘어가면서 크게 일군 것 없던 지난 시절들이 후회되기도 했고, 앞으로 다가올 40대의 일들이 막연하게 두렵기도 했지만, 이제는 확신을 가지고 알게 되었다. 지금 시점이 내 안에 쌓인 재료들이 비로소 꽃을 피우는 시기라는 것을. 그간의 축적된 경험이 드디어 결과물들로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AI의 파도가 이 나이쯤에 왔다는 것이 나쁘지 않다, 외려 적절한 시기에 왔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늦은 시기가 아니라,
비로소 쓸 수 있는 시기다.

 

 

 

40대, 우리는 이제야 진짜 내 목소리를 낼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