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진작가인가, 유통업자인가? (feat: 이동진 영화평론가)
(이동진 평론가의 유튜브, 교양이 없으면 안되는 이유를 듣고 쓴 칼럼)
우리는 매일 수 많은 정보와 선택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보의 수평화로 인하여 24시간, 전세계의 정보는 내 손 안으로 너무나도 쉽게 들어오고 있다. 빵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 제빵 명장의 레시피를 쉽게 알 수 있게 되었고, 와인을 고를 때 표지 라벨만 촬영하면 와인 애호가들이 찾는 앱에서 전 세계인들이 매긴 평점과 후기를 읽어볼 수 있다. 정보의 수평적인 흐름으로 인하여, 애호가들과 전문가들의 기술적, 지식적 갭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와 시뮬레이션 과잉의 세계속에서 진짜 자신의 본업과 본진을 찾는 행위는 현대 사람들에게 도외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 음식을 좋아해서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아보고, 유명 쉐프들의 개인 방송을 찾아보면서 어느 정도 파스타를 잘 만들 줄 안다고 해서 그것을 개인의 본진, 즉 전문 영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본 작가가 본진으로 개발하고 있는 사진 분야도 정확히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취미로 시작한 사진, 카메라에 대한 기기적 관심, 몇 번의 인물 촬영 경험과 몇 번의 은하수 촬영 경험은 단 몇 번의 파스타를 만들어 본 경험치와 비슷한 등가를 가진다. 그것은 취미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지, 개인의 이름과 인생을 걸고 전진할 수 있는 동력과 본진이 되지 못한다.
(송길영 작가의 책 속에서) 과거에는 빵을 굽던 사람들을 Baker라고 불렀다. 지금도 Baker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빵을 굽던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빵을 굽는 것이 직업이자 자신의 이름(호명)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대에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빵굽는 사람들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빵을 전혀 굽지 않고, 매장을 임대해서 유통만 하는 사람들을 제빵사(Baker)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른 바 유통업 종사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반면에, 빵을 정말 사랑한 나머지, 집에서 빵을 구워보기 시작하고, 더 맛있는 빵을 굽기 위하여 덕질을 하듯 공부를 하고 연습을 해서 자신만의 노력과 수련의 가치가 깃든 빵을 만들어 낸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작은 매장으로 업을 시작하고, 프랜차이즈 빵집과 확실히 다른 맛 차이를 내기 시작하며 주민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고, 번화가 사거리에 자리한 프랜차이즈 빵집 틈 사이에서도 단골 고객들이 꾸준히 찾는 매장이 되어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이는 한 제빵사의 이름으로 호명될 수 있는 빵집이 된다. 그 빵에는 그 사람의 가치, 노력, 수련의 과정들이 깊이 담겨있음을 알기에,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빵지순례지중 한 곳으로 삼을 만큼 사랑을 받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유통업으로 빵을 다루는 사장님들이 절대 갖지 못하는 깊이와 철학이 한 사람의 이름을 건 빵 브랜드에서 숨쉬고 있는 것이다.
현 시대에 이런 사람들을 전문가라고 한다. 예전에는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대기업에서 무슨 직함을 달고 있는지가 중요한 가치였지만, 이는 팬데믹 이후인 2020년대 중반에 이르러 대부분 해체가 되고 있다. 이제는 위의 사례처럼 한 명의 핵개인으로서의 능력과 철학이 담긴 브랜딩을 말해야만하는 시대다. 능력없는 사람들의 번지르르한 겉포장은 이제 내실의 알몸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본 작가가 종사하고 있는 사진 세계로 예를 들면, 사진 기술력, 작가의 철학, 수련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이름값에만 의존했던 사진작가들도 역시 빠르게 빛을 잃어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기술이 없는 사진가, 자신의 본진 분야에 대하여 해박하지 못한 사진가, 철학이 없이 우연의 연속의 것들을 겹겹이 쌓아 명성의 성역을 만들었던 사진가들은 결국 두터운 갑옷속에 숨겨둔 빈약한 근육을 투명하게 보여줄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문 분야, 즉 본진에 대한 자기 철학이 튼튼하게 서 있으려면, 그 구조의 철근 역할은 교양이 맡게 된다. 이동진 평론가의 유튜브 영상 중 <교양 없으면 안되는 이유> 편은 나의 이러한 생각들을 정확하게 대변해주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맥락과 사고의 힘을 강조한다. 교양은 특정 지식이 전체 체계 안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 그 지식이 유용한지 거짓인지 판별할 수 있는 비판 정신임을 말하며, 많은 사람이 '누가(어떤 집단에 속한 사람이) 말했느냐'를 기준으로 진위를 따지는 '지적 게으름'에 빠져 있다고 역설하고, 이를 경계하며, 소속된 집단(학벌, 성별, 지역 등)의 가치 뒤에 숨지 말고 개인의 식견으로 승부할 것을 권하고 있다. 정보와 시뮬레이션 과잉 상황에서 자신, 자기 이름(호명), 본진과 전문 분야에 대한 정확한 디렉션을 찾기 위하여 교양의 축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고, 자신만의 브랜딩을 쌓아올려야 하는데, '유명한 사람 누가 말했다더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사람은 이렇게 해서 성공했던데...' 등의 사회적인 위치, 직함, 대중 인기로 말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우선하지 말고, 다양한 정보속에서 판단하고 성찰에 이르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속에 교양을 얼마나 튼튼하게 쌓았는지(구조의 철근 역할)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결국 이는 독서의 필요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본 작가(이준희)는 사진으로 전문 분야와 본진을 구축했던 11년 간의 삶이 있었고, 현재도 이를 위하여 다양한 독서와 강의 시청을 하는 중인데, 이 외에도 오랫동안 관심 분야로 삼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와인을 말하자면, 와인을 단순히 소고기에 곁들여 마시거나 라이프 스타일속에서 우아함을 더하는 음료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본 작가는 와인을 즐기면서도, 그간의 관심이 반영된 독서와 영상등을 통하여 이 술은 수 천년 이상의 과학과 문명, 문화와 인문의 가치가 집약된 단 한 병 이라는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이는 Playful하면서도 지식적 관심이 축적된 성찰이며, 본 작가의 본진의 분야가 아니더라도, 무엇이 어떻게 생성되고 사랑받고 소비되는지 특정 장르를 바라보며 튼튼한 교양적, 예술적 두께를 쌓아올리는 중이다.
또 다른 장르를 예를 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핸드폰과 태블릿, TV까지 점령하고 있는 유튜브라는 매체를 보면서,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과 킬링 타임의 가치를 가진 매개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보전달매체로서 TV시대에서 개인의 휴대폰으로의 시점 이전은 거대 정보 문명의 해체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관점으로 유튜브라는 손 안의 매체를 바라보게 된다. 이를 통하여 사진이라는 또 하나의 시각 매체를 다루는 한 명의 전문가로서, 사람들의 시점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대중의 관심사는 어떤 것인지 등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본인의 본진인 사진 분야에 대한 예시는 어떨까? 19세기부터 20세기의 사진은 실상을 기록하던 현상 매체였다. 하지만, 디지털로의 전환, 아이폰의 등장(4차 산업혁명), AI의 등장 이후로 점점 가속화되는 기록 사진 매체의 가치 하락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분야에 직업적으로 임하면서도 역사적인 방향성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회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본인의 전문 분야를 바라보는 교양적이면서도 거시적인 관점은 앞으로 어떤 디렉션을 가지는 것이 유리한지에 대한 해석을 포함하게 되었다. 넓은 영역의 사진 분야를 이곳저곳 건너 뛰어다니며 무작위의 촬영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촬영의 가치를 녹여 낸 전문 비즈니스 형태의 사업자 활동을 하게 되었다. 본 작가는 희소한 촬영 장르를 명확하게 만들고, 그 장르 안에서의 최선의 결과물 전달, 촬영 속도, 대한민국 전지역 출장 시스템 등을 갖추는 전문적 브랜딩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과거의 한 장소 안에서 활동하는 스튜디오 단위와는 완전히 다른 사진 사업자의 형태라고 여기고 있다.
이러한 생각과 철학이 결집된 나만의 것. 어떤 조직의 이름이나 직함의 방패 안에서의 활동이 아닌, 나의 '이름'으로 자립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에는 본진에 대한 수련 활동과 더불어 사고의 뼈대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교양에 대한 탐구가 지속된 것이 여태까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한 행위는 아니며, 언제나 독서와 교양은 삶의 성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핵개인이라는 현대 사회의 최소의 활동 집단은 이제 어디에도 묶이지 않은 자유로움 위에 서 있다. 이전 세상에서는 회사에 속한 채로 자신이 잘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분업화의 방패가 존재했지만, 혼자가 된 핵개인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해야 한다. 판단 앞에서 '결정 장애'가 있어서는 곤란하다. 카페 카운터 앞에서 지금 어떤 음료를 원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카푸치노가 어떤 음료인지 알고 있어야 하고, 우유를 두유로 바꾸면 어떤 맛이 느껴지는지를 잘 아는 등의 경험과 탐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해체되는 핵개인 사회에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디렉션을 정할 수 있게 된다.
본 작가처럼 사진업을 행하면서도, 변화없이 유지만 하는 단순 촬영 스튜디오보다는(네이버 플레이스나 인스타그램의 마케팅쪽에만 투자하는 유통업의 예), 사진작가의 고유한 철학을 기반으로 전문성의 틀을 확보하고, 교양적인 가치와 유니크한 기술을 녹여낼 수 있는 사진작가는 핵개인의 사회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높은 사진의 가치와 상업적 성과를 보여줄 것이 분명하다. 핵개인 사회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은 모든 상업 사진작가들에게 이러한 숙제를 내주고 있으며,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취미형 사진작가로서도 금전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서 앞으로 자기만의 것을 어떠한 과정과 방식을 통하여 사진속에 유의미한 결과물로 보여줄 것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예를 들어 지금 나는 스페셜티 원두를 판매하는 카페에 와 있다. 한 손에는 결제를 위한 카드를 들고 카운터 앞에서 메뉴를 보며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다. 핸드 드립(푸어 오버)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할 것인지, 머신으로 커피를 추출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커피를 고르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에티오피아의 한 농장의 전통 방식을 고집한 워시드 원두를 고를 것인지, 중남미지역에서 생산된 원두 중 무산소 발효방식으로 가공된 커피를 택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던 것은 커피 대한 그간의 관심 덕분에 생긴 탐구 생활 덕분에 자연스럽게 깃든 '커피 교양'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택 속에는 커피가 궁금하고 좋아서 읽었던 커피 도서들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구독해놓은 바리스타 유튜버들도 많은 교양적 지식을 전수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에게 커피에 대하여 더 많은 정보들이 생김으로써, 더 많은 커피의 종류를 눈과 코와 혀로 알아보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커피에 대한 자신의 취향이 자연스레 생겼을 것이다. 브랜딩은 이렇게 시작되게 된다. "나는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커피의 깔끔함,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플로럴하면서도 티같이 잔잔한 아로마를 좋아해." "중남미 게이샤 품종을 내추럴 가공한 커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와인같은 발효 풍미가 최고지." 등의 자신만의 기호를 담은 취향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 그것은 커피라는 한 장르를 탐구해서 얻게되는 교양에서 시작된다. (본인의 경우에는 교양적인 취향, 전문가로서는 업으로의 취향의 시작)
어떤 이들은 커피라는 직업을 택할 때 위와 같은 흥미와 탐구가 기반이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계산기를 잘 두드려 목 좋은 곳에 프랜차이즈 저가 커피 매장을 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지방의 넓은 땅에 투자를 하며 대형 카페를 여는 사장님들의 케이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본 작가가 가장 먼저 찾아가고 싶은 카페는 커피를 사랑하고 커피 맛의 탐구에 인생을 쏟는 덕질하는 전자가 운영하는 카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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