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상을 공부하다가 포기했던 이유 - 송길영 작가의 <호명사회>에서 말하는 '본진'
송길영 작가의 책 <호명사회> 중 한 구절
"효용이나 결과만 말하는 순간 그것은 직업이 아닌 취미 수준의 소통에 머무를 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직업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와중에 그 근간에 ‘불안’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N잡러’라는 용어, ‘OO 지망생’이라는 표현, 단기 속성 과정만 시도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다중화하고 위험을 분산해 불안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시작점은 N잡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본인의 잡job’인 ‘본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본진’이라 함은 순전히 직무 혹은 소득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자신의 정체성이 자리매김하는 고유 영역을 뜻합니다. 본진도 없이 곡예사처럼 N개의 일을 저글링 하는 것은 정체성의 기반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공공사업에 참여하고, 개인적으로 글도 쓰고, 사람들과 연계해서 모임도 갖는 등 여러 가지를 해도 그중 어떤 것도 자립할 수 있는 업이 되지 못한다면, 마치 작은 부품을 모아 커다란 합체 로봇을 만들어도 끝내 젖은 볏단처럼 서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할 코어가 불안정하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한 구조가 나오게 됩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의 삶을 정의할 수 있는 수식어’를 만들어보아야 합니다. 그 단어가 본업으로 인지될 수 있다면 정체성의 뿌리가 단단히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실천 방법과 효용의 대상이 모두 존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누구나 친구들의 고민 상담을 해줄 수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라이브 방송에서도 고민 상담은 흥미로운 콘텐츠이고 사람들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곤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상담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서’라는 직업의식과 ‘사람의 몸과 마음에 대한 이해를 과학적으로 공부하는’ 수련의 과정이 합쳐져야 ‘그들의 마음을 읽고 위로한다’라는 ‘업’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 없이 그 효용이나 결과만 말하는 순간 그것은 직업이 아닌 취미 수준의 소통에 머무를 뿐입니다.
우리의 출발점에서부터 최종적인 성장 단계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본진’입니다. 복수의 정체성을 추구하고자 할 때 오히려 더욱 필요한 것은 깊이 뿌리내려 전문성을 키워나갈 수 있는 주력 분야의 확립입니다. 지난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이야기한 ‘당신이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기여가 얼마나 치열한지’를 중심으로 본진을 탄탄하게 닦아야 그 경계를 넘어 다음 업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평생 살면서 한 가지 직업을 넘어설 만큼 오래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애 주기가 길어질수록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앞서 설명한 AI 기반의 ‘자동화’입니다. 본진의 역량을 닦는 것만큼 본진이 속한 분야에 영향을 주는 사회 변화를 주시해야 합니다.
위의 글은 송길영작가의 시대예보 시리즈 중 두 번째인 <호명사회>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이 책은 현시대의 핵개인으로서 살아나가는 삶을 비추는 바이블중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본 작가같은 경우에는 '사진'이라는 분야에서 현 시대에 어떤 디렉션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투명하고 날카로운 지침을 받고있는 중이다. 현 시대의 사회의 변화와 개개인에 대한 상당히 밀도 높은 고찰이 책 속에 가득 담겨있고, 이를 통하여 나 자신을 이 앞에 대비시켜보는 과정이 독서속에 녹아있게 되었다.
그 중에 한 파트를 책갈피를 해놨다가 이곳에도 소개를 해 본다. 책 내용중 초중반에 나오는 내용으로, 이 이야기 앞에서는 사회의 정보력이 고도화되다보니,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시뮬레이션하다가 그 행위들이 초 과잉이 되고 만다, 그 과잉된 시뮬레이션으로 인하여 모두가 에너지 낭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과감하게 절단하고 '자신의 것'을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라는 내용이었고, 여기서 N잡러나 여러가지 꿈을 꾸기만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을 지양하고 자신의 삶을 정의할 수 있는 본진을 만들라는 내용이다.
본인의 무대인 사진으로 옮겨와보자. 본인(이준희작가)은 한 때 스튜디오가 멸망하는 나머지, 사진의 길에서 잠시 영상가의 길을 꿈꾼적이 있었다. 사진은 임금이 낮고, 일거리가 적어보이는 반면에 팬데믹 시기에 유튜브나 개인방송의 급격한 성장으로 영상쪽의 일들이 더 많아지고 좋은 대우를 받는 것 처럼 느껴져서 영상을 좀 공부해서 영상과 사진으로 둘 다 수익을 올려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영상 공부를 위해 계속 유튜브나 책을 찾아보며 독학도 좀 하고, 레슨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고, 이것 저것 없는 돈에 장비를 사 모으기도 했었지만 결국 "사진이나 잘 하자."라는 결론을 맺고 영상 공부를 포기했다. 사진을 좀 했다고 영상을 잘 하는 것과는 관계가 딱히 없으며, 영상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또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과 기회비용을 분산하는 꼴이었다. (3년 동안 매일 10시간씩, 3시간씩 10년, 전문가가 되기 위한 시간)
나의 '본진'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좋아했고 사진의 전문가가 되기 위하여 여기까지 왔기에, 진정한 사진의 전문가로 손색없는 한 명의 기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나는 셀프 수련을 시작했고, 내가 담당할 장르의 촬영에 있어서 흐트러짐이 없이 완벽하게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결과로는 그 판단이 100%맞았다. 이도 저도 아닌 사람으로 남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여러가지를 동시에 도전한다는 것은 어떤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말로 바꿔 볼 수 있다. 송길영 작가의 말마따나 - ‘당신이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기여가 얼마나 치열한지’를 중심으로 본진을 탄탄하게 닦아야 그 경계를 넘어 다음 업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 처럼 내가 사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진에 대한 기여가 얼마나 치열한지를 중심으로 본진을 닦은 결과, 현재 대한민국에서 동일 장르에 대한 경쟁자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진가, 예술가 분들께 묻는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본진에 대하여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를 위하여 수련을 하고 있습니까? 그 본진에 대한 것들이 자신의 삶을 정의할 수 있는 수식어를 남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본진에 대하여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 본진이 여러분의 삶을 정의하는 단 하나의 수식어가 되고 있습니까?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치열한 수련만이 여러분을 '호명'하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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