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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미세한 흔들림

 

 

마이클 잭슨의 미세한 흔들림

 

 

 

최근 화제작인 영화 《마이클》을 보고 왔다. 보고 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지만, 그의 서사와 음악과 무대, 그리고 그 시대 특유의 무드가 한동안 마음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오랜만에 마이클 잭슨의 정규 앨범들을 다시 정주행했다. 오랜만에 다시 들었지만, 그 음악들은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들어도 여전히 이상할 만큼 생생했고, 어떤 곡들은 요즘의 음악보다 더 과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은 단순히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든 사람이었다. 그의 목소리, 움직임, 의상, 무대, 뮤직비디오, 손끝의 제스처, 짧은 호흡과 비명처럼 튀어나오는 추임새까지 모두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사후에도 사람들은 그를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처럼 기억한다. 어떤 사람은 곡을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문워크를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흰 양말과 검은 구두를 기억한다. 강한 브랜드란 어쩌면 그렇게 한 사람의 모든 조각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묶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의 앨범을 다시 들으면서 특히 흥미롭게 느낀 것은 보컬의 질감이었다. 지금 시대의 음원들은 대체로 매우 매끈하다. 피치는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박자는 촘촘하게 정렬되며, 목소리의 작은 흔들림까지 기술적으로 보정된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의 음악은 지금의 기술과 감각 안에서 완성된다. 하지만 마이클의 노래를 다시 듣고 있으면, 지금처럼 디지털로 매끈하게 정렬된 보컬과는 다른 질감이 느껴진다. 목소리 안에 그 사람의 몸과 호흡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느낌에 가깝다.

 

한때 음악을 가까이 접했던 사람의 귀로 들으면, 그의 노래 안에는 절대값으로 보정된 피치와는 다른 미세한 흔들림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불안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하게도 일정한 결을 가진다. 그것은 마이클 잭슨이 음을 틀렸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노래한다는 느낌이다. 그의 호흡, 발음, 몸의 리듬, 감정의 속도가 피치 안에 함께 묻어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결함이라기보다 그의 노래를 마이클 잭슨의 노래로 느끼게 만드는 일부다.

 

우리는 흔히 완벽한 피치를 좋은 노래의 기준으로 생각한다. 보컬리스트들은 정확한 음정과 안정적인 발성을 위해 오랫동안 훈련한다. 소프라노 조수미 같은 클래식 성악가부터 대중음악의 뛰어난 보컬리스트들까지, 완성도 높은 노래에는 분명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좋은 노래가 절대적으로 완벽한 피치에서만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목소리는 조금 거칠고, 어떤 보컬은 조금 흔들리며, 어떤 가수는 정교한 발성보다 자기만의 감정과 음색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붙든다.

 

밥 딜런이나 존 레논, 한국의 김광석이나 송창식 같은 이름들을 떠올려봐도 그렇다. 그들의 노래를 사람들이 오래 듣는 이유는 단순히 음정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물론 그들 각자의 음악적 완성도와 표현력은 말할 것도 없이 강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목소리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 안에 그 사람만의 결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 거칠고, 조금 흔들리고, 조금은 설명하기 어려운 음색과 호흡. 그것은 보정으로 매끈하게 다듬을 수 있는 종류의 매력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다듬어버리면 사라질 수도 있는 얼굴이다.

 

나는 이 지점이 사진과도 닮아 있다고 느낀다. 어떤 스튜디오 작가와 함께 작업하던 현장에서, 내가 조명을 배치한 방식이 불편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여러 조명을 완전히 같은 거리와 같은 힘으로 놓지 않았다. 각각의 빛이 피사체에게 조금씩 다른 힘으로 닿기를 원했다. 어떤 빛은 강하게, 어떤 빛은 약하게, 어떤 빛은 선명하게, 어떤 빛은 조금 흐리게. 그 작가는 아마도 더 균등하고 안정적인 빛을 원했을 것이다. 완전히 같은 파워, 같은 거리, 같은 균형. 하지만 나는 그런 데칼코마니식 대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오히려 조금씩 깨진 균형이다. 조명의 힘이 떨어지는 곳도 있고, 넘치는 곳도 있으며, 한 장의 프레임 안에서 빛의 세기가 다르게 움직이는 상태. 너무 똑같고 균등한 이미지는 안정적일 수 있지만, 때로는 사람의 시선을 오래 붙들지 못한다. 반대로 어딘가 조금 어긋난 빛이 있으면 사람은 묻게 된다. 왜 저쪽은 더 어둡지. 왜 이쪽 빛은 더 강하지. 왜 완전히 대칭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그 질문이 생기는 순간, 이미지는 단순히 예쁜 사진을 넘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사진가는 단 한 장의 사진 안에 서사의 폭발력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균등하게 정리하는 것보다, 때로는 서로 다른 힘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 완벽한 대칭은 안정감을 주지만, 의도된 비대칭은 긴장감을 만든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보는 사람에게 이유를 상상하게 만든다. 나는 그것이 좋은 이미지가 가질 수 있는 힘 중 하나라고 믿는다.

 

마이클 잭슨의 보컬에 지금 시대의 방식으로 지나치게 매끈한 피치 보정을 걸어버린다고 상상해본다. 어쩌면 더 정확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더 좋아질까. 나는 잘 모르겠다. 완벽한 수치에 가까워질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마이클만의 호흡과 흔들림, 몸으로 밀어내는 리듬과 감정의 결이 일부 사라질 수도 있다. 완벽해질 수는 있지만, 고유한 것이 지워질 수 있다. 예술에서 이것은 꽤 중요한 문제다.

 

물론 나는 불완전함 자체를 예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것을 개성이라고 우기고 싶지도 않다. 마이클 잭슨의 보컬은 사실 완벽에 가까운 기술과 엄청난 훈련 위에 서 있다. 중요한 것은 수준 낮은 결함을 포장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높은 완성도를 향해 나아가되,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미세한 결을 지워버리지 않는 일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되, 완벽한 수치만을 위해 고유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특히 AI 시대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앞으로의 콘텐츠들은 점점 더 매끈해질 것이다. 이미지도, 음악도, 글도, 영상도, 사람의 얼굴도 점점 더 완벽하게 다듬어질 것이다. 어색한 부분은 사라지고, 흔들림은 정리되고, 결함은 보정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게 무결해질수록 사람들은 다시 인간적인 흔적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조금 다른 호흡, 미세한 흔들림, 설명하기 어려운 결, 완전히 정렬되지 않은 감정. 그것들이 오히려 인간이 만든 것의 증거처럼 느껴질 수 있다.

 

브랜딩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완벽하게 다듬어진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는, 완벽함 자체가 차별점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자기만의 결, 자기만의 흔들림, 자기만의 비대칭이 브랜드의 얼굴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이클의 노래가 마이클로 들리는 이유가 정확한 피치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듯이, 좋은 브랜드 역시 완벽한 표면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그 사람만의 리듬을 느낀다.

 

나는 내 사진도 그렇게 가고 싶다. 완벽한 대칭보다 의도된 긴장감이 있는 사진. 모든 빛이 똑같이 닿는 이미지보다, 서로 다른 힘의 빛이 한 프레임 안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사진. 너무 매끈해서 이유가 사라지는 사진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잠시 생각하게 하는 사진. 결국 완벽함은 목표가 될 수 있지만, 고유함은 지켜야 할 얼굴이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다시 들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완벽한 수치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때로 그 수치에서 조금 벗어난 한 사람의 고유한 결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결이 일정한 방식으로 반복될 때,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스타일이 된다. 스타일이 충분히 강해지면 브랜드가 된다. AI 시대에 우리가 더 깊게 고민해야 할 것도 바로 그 지점일지 모른다. 완벽해지려는 노력 속에서도, 무엇을 끝까지 인간의 결로 남겨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