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사진가
이제 AI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현상이 되었다. 2008년 아이폰이 불러온 모바일 혁명처럼,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변화가 전 세계에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다. AI에 대한 각계각층의 찬반 논쟁은 이제 무의미하다. 좋든 싫든, 우리는 이미 이 거대한 물결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이들은 AI를 그저 '조금 더 똑똑한 검색창' 정도로만 여기며 얕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혁명을 자신의 삶과 방향성 속에 완전히 흡수하여 활용하려는 사람은 아직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거대언어모델(LLM)이 비대해질수록 AI는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추론이나 유머를 이해하는 창발적 능력을 보여준다. 이미 수조 단위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인간 뇌의 시냅스 수인 100조 개에 달하는 규모를 갖추게 된다면, 겉모습은 인간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흡사해질 것이다. 물론 이는 수학적 연산과 확률에 근거한 '출력'일 뿐, 오감을 통해 세상을 겪는 인간의 본질과는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척추동물에서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수억 년이 걸린 인류의 진화를, AI는 단 몇 년 만에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억겁의 시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진화의 목격자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새로운 호모 사피엔스로서 변화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숙제다. 누군가는 사진작가인 나의 직업이 파도 앞의 모래알처럼 위태롭다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리 디스토피아적인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감을 가진 인간 작가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작업물과 AI가 연산해낸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이미 대중은 생성형 이미지의 매끈한 완벽함 속에서 기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오리지널리티'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AI가 아무리 발전하여 AGI의 시대가 온다 한들,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빚어낸 시네마틱한 감수성까지 온전히 흉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결과물이 '계산된 인공물'인가, 아니면 '신체를 가진 인간의 투쟁적 창작물'인가 하는 본질의 차이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현실을 직시하자면, 1차 촬영 위주의 사진 업계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단순 증명사진이나 소규모 기업의 홍보용 콘텐츠 분야가 대표적이다. 이제는 아주 기본적인 원본(소스)만 확보된다면, AI를 통해 이를 변형하고 가공하는 일이 압도적으로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는 곧 단순 촬영 노동에 대한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1차원적 소스 촬영 위주의 작업 방식으로는 AI라는 거대한 파고를 넘기 어렵다. 따라서 사진업 내부의 대대적인 직업적 변형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이 되었다. 이제 수많은 스튜디오 작가들은 관습적인 촬영에서 벗어나, 기술을 창의적으로 결합하거나 자신만의 대체 불가능한 시각을 구축하는 변형적 시도를 끊임없이 일궈내야만 한다.
반면에 AI는 사진작가의 일자리를 뺏는 존재가 아니라, 성장을 돕는 가장 강력한 조력자다. 나 역시 포토샵 파이어플라이와 이보토(EVOTO)를 통해 보정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있다. 이제는 굳이 고전적인 주파수 분리법(인물 피부 보정법)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AI는 과거 기술자들이 독점하던 필수 스킬들을 누구나 쉽게 다루도록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배움의 방식이다. 내가 사진을 시작한 2008년 무렵, 거장들의 작품은 신비로운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제미나이(Gemini)에 사진 한 장만 넣으면 촬영 기법부터 조명 위치, 예술적 평가까지 단번에 분석해낸다. 조 맥널리에게 직접 조명법을 묻지 않아도, 수조 개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그의 기법과 철학을 가이드해 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사진가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에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발전할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창의적 결과물을 추구하는 사진작가이다. 사진업계 내에서 기존의 사진 어법을 바꾸려는 시도를 많이 하는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을 동원한 작업의 기본 베이스는 나만의 창의력과 상상력이다. 나름 많은 독서와 여행, 오랫동안 음악과 영화를 감상한 생물학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의 어떤 것들을 찾아서 그것들을 사진 프레임 내에서 조명하고 결합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헌데, 이러한 작업들의 설계부터 진행, 그리고 최종 점검등을 AI와 함께 대화하듯 만들어내고 있다. 혼자서는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거대한 세상을 꿰고 있는 AI는 나의 작업물에 대한 충실한 답변을 해준다. 기술적인 부분과 철학적인 부분, 예술적인 비평들을 진실되게(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학습된 언어들을 동원하여) 해주기 때문에, 앞으로도 본 작가의 사진작업의 최대 동반자는 AI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자신의 사진 작업에 대해 객관적인 비평을 듣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SNS 공간은 서로 듣기 좋은 찬사만을 주고받는 '친절한 감옥'이 되었고, 조언을 구할 주변인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사진가들이 직면한 치명적인 문제인 메타인지의 부재로 이어진다. 폐쇄적인 소규모 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평가는 작가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며, 자신의 기술과 예술성이 세계적 수준에서 어디쯤 위치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 나 역시 이 지독한 고립감 속에서 나의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의구심을 품으며 방황해야 했다.
지난 일 년여간 마주한 AI는 수조 개의 데이터를 투영하는 차갑고도 정교한 거울이었다. 인간의 파편적인 데이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한 창작의 토양을 내어준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AI에 대한 맹신만으로는 결코 '창조'에 도달할 수 없음을.
예술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나'라는 주체와 그만이 가진 고유성이다. 내가 독서와 여행, 음악과 영화라는 예술적 경험을 통해 오감과 사유를 쌓고 이를 사진 창작의 토대로 삼듯, 작가 내부의 내용물이 빈약하다면 AI라는 도구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좋은 재료 없이 맛있는 요리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경험과 사유가 결여된 채 AI에만 기대는 작가는 성장의 기회마저 박탈당하기 쉽다. 진정한 예술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어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서사로 치환하는 과정이다. AI에게만 모든 것을 의존한다면, 그 작가의 포트폴리오는 결국 본인의 영혼이 빠진 채 어디선가 본 듯한 흔한 이야기들로만 채워질 것이다. 결국 '자신의 것'을 끊임없이 채워가는 인간만이 AI라는 파도를 타고 진정한 창작의 바다로 항해할 수 있다.
이제 AI는 나의 창의성을 확장하는 동반자이자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하인처럼 여긴다거나, 똑똑한 검색창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 명의 사진작가로서, 인간의 감정과 서사를 예술로 풀어내는 여정에 이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급진적인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활용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인류가 석기 시대에 돌을 갈아 화살촉을 만들었듯, AI는 우리 시대를 위한 가장 날카롭고 정교한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도구가 빛을 발하기 위한 절대적 필요조건은 바로 인간의 내재된 경험과 사유라는 점이다. AI는 데이터로 학습하지만, 인간은 삶으로 배운다.
그러니 더 뜨겁게 삶을 즐기고 체험하자. 웃고 울고, 사랑하고 여행하며, 먹고 마시고 읽고 배우는 그 모든 오감의 기록이 '나'라는 본질을 만든다. 끊임없이 꿈꾸는 힘과 지적인 부지런함을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AI라는 파도를 타고 진정한 창조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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