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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ai를 뛰어넘는 우리의 창의력 / 예술 과식


스물두 살부터 대학 생활을 시작했으니, 해외를 누비던 코로나 이전까지 약 15년간 정말 많이 ‘먹고’ 다녔다. 위에서 쓴 것은 편린에 불과하다. 부끄럽게도 ‘많이 놀았다’가 아니라, 지금은 이것이 나의 자산이다. 그리고 이 자산이 인정받기 전까지 버텨낸 내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때 버텼기에 지금 이토록 풍성한 ‘배설’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비록 저속한 표현이라 할지라도, 이보다 더 적확한 답은 찾기 어렵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에서 시작해, 사진을 잘 하고 싶다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바로 많이 먹는 것, 즉 예술을 과식하는 것이다. 예술을 하려는 사람이 예술을 먹어보지 않고 그 맛이 어떤지 알기 어렵다. 명작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보고, 홀로 심야 극장을 찾아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앉아 여운을 즐겨봐야 한다. 극장을 나와 도심의 깊은 밤을 홀로 쓸쓸하게 터벅터벅 걸으며 생각에 잠기고 새벽 공기를 허파 가장 깊은 곳까지 마셔보기도 해야 한다. 좋은 음악을 들어도 좋다. 인기 차트 속의 음악보다는 손으로 연주한 음악들을 들으며 인간의 손으로 만드는 앙상블의 관계와 공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이 작은 사회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So What』**을 들으며 콘트라베이스의 깊은 떨림을 느끼고 관악기와 피아노의 협연과 함께 드럼 비트에 맞춰서 스윙해야 한다. 시를 읽고 말을 씹어 먹어 단맛을 느껴보기도 하고, 코에 닿는 은은한 아로마도 맡아야 한다. 화가들의 전시도 찾아 프레임의 의미와 표현의 당위성을 바라보려 노력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예술적인 놀이이며, 가장 맛있는 식사다. 이탈리아 소도시에서 맛있는 파니니를 먹고, 태국 방콕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지역 음식을 맛보고, 뉴욕에서 이민 1세대로부터 이어진 피자를 맛보고, 일본 나고야에서 히츠마부시(장어덮밥)에 가쓰오부시 국물을 부어 질감과 향의  최상의 조화를 음미하는 것, 그런 것들은 결국 예술가의 탄탄한 근육이 되어줄 것이다. 기술은 언젠가 결국 성장하겠지만, 가슴속의 것들은 섭취하지 않으면 단백질 없이 근성장을 이루려는 것과 같다. 사진가뿐이겠는가. 어떤 분야든 최고의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깊은 철학적 깊이와 인문학적 소양을 가졌는지에 달려 있으며, 그것이 뿌리가 되어 예술가의 세계관을 무성하게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니 먹고 또 먹어 과식을 해보자. 그럼 당신은 근성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