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제조업이다

올해 들어 했던 일 중 꽤 공을 들인 일이 있다.
바로 촬영 상세 안내와 예약 가이드 브로슈어를 만드는 일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오래전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미뤄두고 있었다.
내가 촬영하는 장르를 나누고, 각각의 촬영 메뉴판을 만들었다.
장르별로는 약 10페이지 정도였고, 이마저도 지금 돌아보면 다시 수정할 부분이 있다.
내용에는 촬영의 차별점은 무엇인지, 어떤 촬영을 하게 되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예약 후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사진은 언제 어떻게 전달되는지, 자주 묻는 질문과 실제 촬영 샘플까지 넣었다.
아이모션을 처음 보는 고객이 아이모션에서 무엇을 사게 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브로슈어 작업을 마치고 홈페이지에 게재한 뒤, 오히려 내가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사진은 열심히 설명했지만, 내가 판매하는 상품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었다.
촬영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 무엇을 찍는지, 몇 장을 받는지, 가격과 추가 옵션은 무엇인지.
촬영 전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인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은 DM이나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쓴다.
그때마다 질문에 답하지만, 고객에게 전달되는 정보는 파편화되어 있다.
그런 상태에서 문의 대비 예약률이 높아지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휴대용 선풍기 하나를 사면서도 상세페이지를 샅샅이 본다.
배터리는 몇 시간 동안 지속되는지, 바람은 얼마나 강한지, 충전 시간은 얼마인지,
안전성은 어떤지, 크기와 무게는 어느 정도인지, 어떤 색상이 있는지까지 확인한다.
몇 만 원짜리 선풍기를 살 때도 그렇다.
그런데 수십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사진 촬영은 어떨까.
사진 몇 장과 가격만 올려놓고,
“사진이 좋으면 알아서 예약하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진은 제조업이다
나는 에세이집 《빛과 디렉션》에서도 이런 말을 썼다.
사진은 제조업이다.
이 말을 들으면 불편한 사진가도 있을 것이다.
사진이 어떻게 제조업이냐고.
사진은 예술이고, 창작이며,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맞다.
내가 말하는 제조업은 똑같은 사진을 찍어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똑같이 높은 품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자는 이야기다.
창작의 결과를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약속한 품질을 반복해서 재현할 수 있는 과정을 표준화하는 것.
상업 사진에서는 이것이 중요하다.
어떤 날은 사진이 기가 막히게 나오고, 어떤 날은 형편없다면 그것을 좋은 상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고객은 30분 만에 충분한 결과물을 받고, 어떤 고객은 두 시간을 찍어도 제대로 된 결과물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을 좋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아이는 사진이 예쁘게 나왔는데, 어떤 아이는 덜 예쁘게 나왔다면 그 차이를 고객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선풍기 공장에서 똑같은 제품을 샀는데 어떤 제품은 배터리가 다섯 시간 가고, 어떤 제품은 한 시간 만에 꺼진다면 그 상품은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사진도 다르지 않다.
상업 사진가는 영감이 오는 날에만 좋은 사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컨디션이 조금 달라도, 장소가 달라도, 고객이 달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프로에게 필요한 재현성이다.
아이모션을 몇 년 동안 운영하며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촬영을 시스템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카메라와 렌즈의 선택, 조명의 위치와 출력, 동조 방식, 연무 분사량, 모니터링, 촬영 거리, 고객의 동선, 포즈와 움직임의 순서, 촬영 시간, 후보정, 결과물 전달까지.
수없이 반복하면서 가장 안정적인 값을 찾았다.
그러다가 변수가 발생하면 다시 수정했다.
촬영 장소가 달라졌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고객이 예상하지 못한 동작을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명이 한꺼번에 촬영을 와도 동일한 품질을 만들 수 있는가.
짧은 시간 안에서도 충분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가.
하나씩 해결했다.
그 결과 아이모션의 촬영은 현재 상당 부분 팀 분업화와 시스템화가 되어 있다.
많은 고객이 한꺼번에 찾아오더라도 드라이브 스루처럼 빠르게 촬영을 진행하면서, 각 고객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사진을 빨리 찍는다는 뜻이 아니다.
짧은 시간에도 메이저 스포츠 브랜드나 프로 구단에서 사용할 법한 밀도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도록 촬영, 조명, 디렉션, 포토샵, 아트워크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것이 지난 몇 년 동안 아이모션이 만든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상품을 설명하는 시스템의 중요성
사진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은 사진가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없다.
내가 어떤 촬영을 하는지, 왜 이런 가격인지, 다른 촬영과 무엇이 다른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설명하지 않으면 고객은 알 방법이 없다.
좋은 상품을 만들었다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까지 상품의 일부다.
사진가들이 흔히 놓치는 지점이다.
사진을 잘 찍는 것과 사진업을 잘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사진을 잘 찍는 것은 기술이다.
하지만 그 기술을 상품으로 만들고, 가격을 정하고, 고객에게 설명하고, 일정한 품질로 반복 생산하며, 다시 구매하거나 추천할 수 있는 경험으로 만드는 것은 사업이다.
사진가가 상업적으로 살아남으려면 이 두 가지를 모두 해야 한다.
이에 더하여 최근에는 블로그로 촬영에 대한 매거진까지 쓰기 시작했다.
실제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현장 스케치와 완성본으로 함께 보여주고, 촬영한 사진가의 해설을 곁들이는 웹 매거진이다.
유튜브로도 만들 수 있지만, 나는 이미지와 글이 고객들이 더 차분하게 접근하기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영상이 지나가는 속도보다, 고객이 읽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매거진에는 앞으로도 주요 촬영들의 이야기를 계속 담아낼 것이다.
고객들은 이를 통해 인스타그램에서는 다 볼 수 없었던 촬영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나도 스포츠 사진으로 성공해야겠다.”
생각한다고 해서 아이모션과 같은 시스템이 바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촬영 시간을 줄이고, 장비 하나를 바꾸고, 조명 위치를 조금 움직이고, 보정 방법 하나를 수정하고, 고객의 동선을 바꾸는 작은 개선이 몇 년 동안 쌓였다.
한 번에 두 걸음을 갈 수는 없다.
가이드 브로슈어는 몇 년 동안 쌓아온 촬영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다.
무엇을 찍는지 모르는데 촬영 가이드를 만들 수는 없다.
자신의 촬영이 어떤 상품인지 정의하지 못했는데 상세페이지를 만들 수도 없다.
결국 브로슈어 한 권을 만들었다는 것은 디자인 파일 하나를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이제야 내가 판매하는 사진이라는 상품을 꽤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사진업은 생각보다 어렵다.
잘 찍어야 한다.
다시 똑같이 잘 찍어야 한다.
다음 고객에게도 잘 찍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왜 사야 하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렇게 생각한다.
사진은 제조업이다.
그리고 사진을 잘 찍는 것은 기술이지만,
그 사진을 반복해서 팔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사업이다.

